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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트렌드/전승민]21억vs 2억… 로봇은 돈을 먹고 큰다

입력 | 2018-01-29 03:00:00


한양대 연구진이 개발한 스키 타는 로봇 ‘다이애나’. 동아일보DB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과학기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DARPA는 미국의 군사연구를 이끄는 기관으로, 간혹 ‘챌린지(도전)’란 이름의 기술경진대회를 연다. 현재 기술로는 실현이 거의 불가능한 과제를 내걸고 ‘정해진 날짜까지 최대한 연구해서 와라. 실력을 겨뤄 1위를 한 팀에 큰 상금을 주겠다’며 부추긴다.

약 15년 전 DARPA는 ‘그랜드 챌린지’를 통해 ‘미국 모하비 사막 내 험로 240km를 운전사 없이 주파할 수 있는 ‘자율주행자동차’를 만들어 오라’는 과제를 던졌다. 상금은 100만 달러(약 10억6000만 원). 2004년 첫 대회가 열렸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완주 팀은 없었고, 참가팀 대부분이 출발 장소를 빠져나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DARPA는 실망하지 않고 도리어 상금을 두 배인 200만 달러로 올렸다. 그 결과 2005년 대회에선 다섯 대의 자율주행차량이 정해진 코스를 훌륭히 완주해 냈다. 다시 2007년, DARPA는 ‘어번 챌린지’란 이름을 걸었다. 주변에 여러 차량이 움직이는 도심 속 60km 코스를 교통규칙을 지키면서 주행해 보라고 요구했다. 출전 팀들은 이 과제마저 해치웠다. 2004년 대회에서 1위, 2005년 대회에서 2위를 했던 카네기멜런대 연구진이 이 대회에서도 1위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 연구진의 상당수가 구글, 우버로 진출해 상업용 자율주행차 실용화를 연구 중이다.

DARPA가 2013년과 2015년, 두 번에 걸쳐 진행한 ‘로보틱스 챌린지’도 마찬가지다. 이 대회는 KAIST 휴보 연구진이 우승을 했고 국내에선 ‘재난로봇대회’라고 알려졌다. 이 대회를 계기로 인간형 로봇의 실용화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DARPA의 도전이 이처럼 인류의 삶을 바꾸고 있는 데 비해 한국의 도전은 깜짝 이벤트로 끝마칠 공산이 커 보인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은 ‘스키로봇 챌린지’라는 제목으로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사흘 후인 다음 달 12일, 강원 횡성군 웰리힐리파크 스키장에서 로봇들의 스키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기획의 독창성은 인정할 만했다. 지금까지 연구 목적의 스키로봇을 개발한 사례는 있지만, 로봇끼리 실력을 겨루는 스키대회는 이번이 명실상부한 세계 최초다. 진흥원 역시 지난해 초 기획 당시 ‘해외 연구팀의 참여를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이 행사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연구팀은 없었다. 출전이 확정된 8개 팀은 모두 사전에 연구비를 지원받은 ‘의무 출전팀’이다. 연구비로 받은 돈은 2억 원 정도로 제대로 된 로봇을 개발하기엔 부족했다(DARPA의 로보틱스 챌린지는 사전 연구비 지원이 10억 원에 이르렀다).

그러니 비용에 맞춰 로봇을 작고 가볍게, 혹은 엉성하게 만든 경우가 많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모금한 팀도 있다. 이 상황에서 1위 상금 1000만 원을 보고 자비로 로봇을 만들어 출전하려는 팀이 있을 리 만무하다. 진흥원 관계자는 “해외에선 캐나다, 국내에선 서울대 등에서 출전 문의가 있었지만 상금 등을 전해 듣고는 실망한 것 같다”고 했다.

도전이란 성공의 큰 득실을 기대하고 실패를 감수하며 달려드는 것이다. 평창을 계기로 한국만의 독창적인 로봇 스키대회가 세계적 기술경진대회로 거듭날 수 있을지, 아니면 한 해 깜짝 이벤트로 끝이 날지는 오롯이 정부의 노력에 달려 있다. 많은 해외 로봇 연구자들이 ‘올겨울에는 한국 스키로봇 챌린지에서 반드시 우승하겠다’며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