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연구진이 개발한 스키 타는 로봇 ‘다이애나’. 동아일보DB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약 15년 전 DARPA는 ‘그랜드 챌린지’를 통해 ‘미국 모하비 사막 내 험로 240km를 운전사 없이 주파할 수 있는 ‘자율주행자동차’를 만들어 오라’는 과제를 던졌다. 상금은 100만 달러(약 10억6000만 원). 2004년 첫 대회가 열렸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완주 팀은 없었고, 참가팀 대부분이 출발 장소를 빠져나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DARPA는 실망하지 않고 도리어 상금을 두 배인 200만 달러로 올렸다. 그 결과 2005년 대회에선 다섯 대의 자율주행차량이 정해진 코스를 훌륭히 완주해 냈다. 다시 2007년, DARPA는 ‘어번 챌린지’란 이름을 걸었다. 주변에 여러 차량이 움직이는 도심 속 60km 코스를 교통규칙을 지키면서 주행해 보라고 요구했다. 출전 팀들은 이 과제마저 해치웠다. 2004년 대회에서 1위, 2005년 대회에서 2위를 했던 카네기멜런대 연구진이 이 대회에서도 1위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 연구진의 상당수가 구글, 우버로 진출해 상업용 자율주행차 실용화를 연구 중이다.
DARPA의 도전이 이처럼 인류의 삶을 바꾸고 있는 데 비해 한국의 도전은 깜짝 이벤트로 끝마칠 공산이 커 보인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은 ‘스키로봇 챌린지’라는 제목으로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사흘 후인 다음 달 12일, 강원 횡성군 웰리힐리파크 스키장에서 로봇들의 스키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기획의 독창성은 인정할 만했다. 지금까지 연구 목적의 스키로봇을 개발한 사례는 있지만, 로봇끼리 실력을 겨루는 스키대회는 이번이 명실상부한 세계 최초다. 진흥원 역시 지난해 초 기획 당시 ‘해외 연구팀의 참여를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이 행사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연구팀은 없었다. 출전이 확정된 8개 팀은 모두 사전에 연구비를 지원받은 ‘의무 출전팀’이다. 연구비로 받은 돈은 2억 원 정도로 제대로 된 로봇을 개발하기엔 부족했다(DARPA의 로보틱스 챌린지는 사전 연구비 지원이 10억 원에 이르렀다).
그러니 비용에 맞춰 로봇을 작고 가볍게, 혹은 엉성하게 만든 경우가 많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모금한 팀도 있다. 이 상황에서 1위 상금 1000만 원을 보고 자비로 로봇을 만들어 출전하려는 팀이 있을 리 만무하다. 진흥원 관계자는 “해외에선 캐나다, 국내에선 서울대 등에서 출전 문의가 있었지만 상금 등을 전해 듣고는 실망한 것 같다”고 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