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 도쿄 특파원
17일 올 상반기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나 혼자서 갑니다’의 저자 와카타케 지사코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지난해 데뷔한 첫 작품으로 만 63세에 일본 신인 작가의 최고 등용문을 통과했다. 일본 언론은 ‘100세 인생 시대에 어울리는 신인의 등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전업주부였던 그는 55세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뜬 뒤 아들의 권유로 소설 강좌에 다녔다. 소설 주인공도 자식을 다 키우고 남편마저 떠나보낸 뒤 ‘늙음’과 맞닥뜨린 74세 할머니. “사람 마음은 다 같지는 않아”라고 도호쿠 사투리로 중얼거리며 고독을, 늙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지난해 11월 말 초판을 내 12만 부가 팔렸다. 작가는 “작품의 주제를 잡는 데 60년 넘게 걸렸다. 뭔가를 시작하는 데 늦은 때는 없다는 걸 실감했다”고 회고한다.
지난해 일본의 연간 베스트셀러 1위는 95세 여성작가 사토 아이코가 쓴 ‘90세, 뭐가 경사라고’가 차지했다. 필자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일상에서 발견하는 자신과 세상의 어리석음을 유쾌하게 지적해 박수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판매 100만 부를 넘었다는 소식에 그녀는 “대체 왜?”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한다.
100세 전후 할머니들의 저서가 일본식 영어로 ‘아라한(around hundred) 책’이라 불리며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표지나 책날개에 저자의 연령을 눈에 띄게 표시한 게 특징. ‘100세 정신과 의사가 발견한 마음 조절법’(다카하시 사치에)은 근 70년의 임상경험을 토대로 ‘삶의 힌트’들을 조언한다. 지금도 현역 화가로 활동하는 시노다 도코(105)의 ‘103세가 돼 알게 된 것’은 2015년 출간된 후 50만 부 넘게 팔렸다. 같은 해 일본 최초의 여성 보도사진가인 사사모토 쓰네코(104)의 ‘호기심 걸(girl), 지금 101세’도 인기를 모았다.
일본 출판계에서 ‘할머니 책’이 금맥임을 깨달은 계기는 2012년 와타나베 가즈코 수녀(당시 85세)의 에세이집 ‘주어진 자리에서 꽃피우세요’가 200만 부 넘게 팔리면서다. 그에 앞서 2009년 시바타 도요(당시 98세)가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자비 출간하자 150만 부 이상 팔렸다.
독자는 ‘롤 모델’을 찾는 60∼80대 여성이 압도적이다. 이들은 ‘아라한 책’에서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선배들의 진취적인 자세를 배운다. 출판사들은 ‘아직도 배고픈’ 독자들의 수요를 충족하고자 노인 저자를 찾아 헤매고 있다. 출판 담당자들은 “80세도 저자로선 아직 젊고, 70대는 너무 젊다”고 말한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