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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혹과 매혹 사이… 형광등이 빚은 빛의 제국

입력 | 2018-01-30 03:00:00


댄 플래빈의 작품들. 왼쪽부터 1966년작 ‘무제(카린과 발터에게)’와 1973년작 ‘무제(당신, 하이너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 1963년작인 ‘1963년 5월 25일의 사선(콩스탕탱 브랑쿠시에게)’. 플래빈은 1963년부터 모든 작품에 형광등을 주 소재로 작품세계를 펼쳤다. 롯데뮤지엄 제공

댄 플래빈(1933∼1996)이란 예술가가 낯설다면, 26일 문을 연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의 ‘댄 플래빈, 위대한 빛’은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 전시다. 특히 전시관에서 처음 마주하는 작품 ‘1963년 5월 25일의 사선’은 달랑 45도쯤 기울어진 형광등 하나가 전부다. 털어놓자면 미리 공부를 하고 가도 좀 ‘거시기’하다.

하지만 우리는 눈치껏 안다. 참아야 한다. 앤디 워홀(1928∼1987)과 비견되는 작가라는데. 솔직히 워홀 작품도 옛날엔 동네 호프집에 내걸린 그림판으로 더 친숙했지 않은가. 모르니까 평가도 맘대로인 거다. 대신 하나씩 배우다 보면 그게 또 나름 즐거우리니.

실제로 ‘형광등의 작가’ 플래빈은 워홀과 공통점이 꽤 많다. 다섯 살 차의 미국 작가로 첫 전시도 1960년 전후쯤. 당시 현지 미술계 대세였던 추상회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팝아트’(워홀)와 ‘미니멀리즘’(플래빈)을 추구했다. 산업재료를 미술로 끌어들였고, 시리즈 연작을 즐겼다. 선구자들이 그렇듯 둘 다 초기엔 욕 많이 먹었다.

이번에 들어온 14점은 플래빈의 ‘욕받이’ 시절이라 할 초기작들(1963∼74년). ‘1963년…’은 바로 그가 처음으로 형광등을 이용한 작품이다. ‘콩스탕탱 브랑쿠시에게’란 부제가 달렸는데, 현대추상조각의 선구자로 불리는 루마니아 조각가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둥(Endless Column)’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형광등도 어지러운데 시골 벌판에 배배 꼬여 30m 넘게 올라간 기둥이라니….

하지만 의외로 플래빈 작품은 미주알고주알 따지지 않아도 딱히 불편하지 않다. 설렁설렁 따라 걸으며 각자 ‘필’대로 맛보면 된다. 원래 ‘빛’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공원에서 햇볕을 쬐려고 광합성과 비타민D까지 연구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눈 부라리며 집중할 필요도 없다. 안구만 뻑뻑해질 뿐. 그저 작품에서 뻗어 나오는 빛을 즐기면 된다.

그런 뜻에서 이번 전시의 ‘앙꼬’로 꼽히는 ‘무제(Untitled)’는 무척 인상적이다. 제목도 없는데 주로 ‘장벽(Barrier)’이라 불리는 이 작품은 길이가 40m를 넘어 기억에 안 남을 수가 없다. 1.2m짜리 형광등이 60cm 간격으로 뻗어 있는데 울타리인지 책장인지 그물인지 묘하다. 작품을 소장한 미국 디아아트(Dia Art)파운데이션 관계자는 “현지 전시장에선 매우 남성적이고 거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는데, 여기선 예쁘고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게 이채롭다”는 감상을 내놓았단다. 역시 빛이란 시공간을 타고 넘는 존재인가 보다.

아쉬운 건 전시 장소다. 찾아가기 너무 힘들다. 롯데월드타워 7층에 있는데 길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잘만 당도하면 공간은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권윤경 롯데뮤지엄 아트디렉터는 “첫 시작인 만큼 플래빈에 이어 ‘사실주의 초상화의 선구자’ 알렉스 카츠의 전시를 준비하는 등 대형 기획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4월 8일까지. 02-1544-7744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