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플래빈의 작품들. 왼쪽부터 1966년작 ‘무제(카린과 발터에게)’와 1973년작 ‘무제(당신, 하이너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 1963년작인 ‘1963년 5월 25일의 사선(콩스탕탱 브랑쿠시에게)’. 플래빈은 1963년부터 모든 작품에 형광등을 주 소재로 작품세계를 펼쳤다. 롯데뮤지엄 제공
하지만 우리는 눈치껏 안다. 참아야 한다. 앤디 워홀(1928∼1987)과 비견되는 작가라는데. 솔직히 워홀 작품도 옛날엔 동네 호프집에 내걸린 그림판으로 더 친숙했지 않은가. 모르니까 평가도 맘대로인 거다. 대신 하나씩 배우다 보면 그게 또 나름 즐거우리니.
실제로 ‘형광등의 작가’ 플래빈은 워홀과 공통점이 꽤 많다. 다섯 살 차의 미국 작가로 첫 전시도 1960년 전후쯤. 당시 현지 미술계 대세였던 추상회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팝아트’(워홀)와 ‘미니멀리즘’(플래빈)을 추구했다. 산업재료를 미술로 끌어들였고, 시리즈 연작을 즐겼다. 선구자들이 그렇듯 둘 다 초기엔 욕 많이 먹었다.
하지만 의외로 플래빈 작품은 미주알고주알 따지지 않아도 딱히 불편하지 않다. 설렁설렁 따라 걸으며 각자 ‘필’대로 맛보면 된다. 원래 ‘빛’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공원에서 햇볕을 쬐려고 광합성과 비타민D까지 연구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눈 부라리며 집중할 필요도 없다. 안구만 뻑뻑해질 뿐. 그저 작품에서 뻗어 나오는 빛을 즐기면 된다.
그런 뜻에서 이번 전시의 ‘앙꼬’로 꼽히는 ‘무제(Untitled)’는 무척 인상적이다. 제목도 없는데 주로 ‘장벽(Barrier)’이라 불리는 이 작품은 길이가 40m를 넘어 기억에 안 남을 수가 없다. 1.2m짜리 형광등이 60cm 간격으로 뻗어 있는데 울타리인지 책장인지 그물인지 묘하다. 작품을 소장한 미국 디아아트(Dia Art)파운데이션 관계자는 “현지 전시장에선 매우 남성적이고 거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는데, 여기선 예쁘고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게 이채롭다”는 감상을 내놓았단다. 역시 빛이란 시공간을 타고 넘는 존재인가 보다.
아쉬운 건 전시 장소다. 찾아가기 너무 힘들다. 롯데월드타워 7층에 있는데 길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잘만 당도하면 공간은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권윤경 롯데뮤지엄 아트디렉터는 “첫 시작인 만큼 플래빈에 이어 ‘사실주의 초상화의 선구자’ 알렉스 카츠의 전시를 준비하는 등 대형 기획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4월 8일까지. 02-1544-7744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