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장관에게 듣는 새해 정책 방향]<5>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한국 기초과학과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을 이끄는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데이터와 네트워크, 인공지능(AI)을 뜻하는 ‘DNA’를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유 장관이 25일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5일 서울중앙우체국 집무실에서 만난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대한민국 ‘엘리트 관료’들이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LG전자, LG CNS, 포스코ICT 등 민간 기업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접목해 공무원들이 일하는 방식을 바꿔 소비자 관점에서 정책의 질(質)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에서였다. ‘초(初)연결, 초지능’을 키워드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향후 정보통신기술(ICT)과 기초과학 정책이 실용적으로 바뀔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음은 유 장관과의 일문일답.
―과기부에서 공무원들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혁신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과는 어떤가.
그간 정부가 소프트웨어(SW) 개발을 발주할 때 개발자를 담당 공무원이 있는 곳으로 불러서 하는 관행이 있었다. 정부의 요구사항을 문서화하기 싫어 그런 것 같은데 그것도 일종의 ‘갑질’로 보고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개선하도록 하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세계적 경쟁 속에서 한국의 위치는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한국이 4차 산업혁명 준비를 빠르게, 잘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모두가 규제를 풀자고 얘기하지만 막상 규제 개혁에 나서려면 부처 간 칸막이와 산업계의 기득권자들이 걸림돌로 작용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 중국 등과 비교해서 우리가 경쟁력이 있는 분야에 집중해 규제를 풀어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DNA’다.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AI)을 뜻한다. 센서에서 빨아들이는 데이터양이 엄청 늘어나고 그 정보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가공·분석하는 일이 쉬워야 한다. 의료 등 분야에서 개인정보 보호가 문제되긴 하지만 비(非)식별화(개인을 알 수 없도록 가공) 방법은 찾으면 된다.
―5G가 핵심인데 필수설비 공유 문제를 두고 통신사 간 이견이 있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을 실감나게 실현하려면 엄청나게 빠른 통신이 필요하다. 그래서 5G가 중요하다. 상용화 목표 시점을 앞당겨 놓은 데다 기지국과 중계기도 더 촘촘하게 설치해야 해서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 이를 구현할 전봇대와 관로 등 필수설비의 70%는 과거 국영기업이었던 KT가 갖고 있고 후발주자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여러 건물주와 다시 협상해야 하는 등 힘든 상황이다. KT가 필수설비를 공유해주고 적정한 대가를 주는 쪽으로 얘기가 되고 있는데 KT는 떨떠름할 것이다. 하지만 5G를 언제 개통하느냐가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5G가 돼야 스마트팜,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 등이 가능해진다. 적정 대가에 대한 KT와의 협상이 잘 안 되면 내가 다시 나설 것이다. 세계가 한국의 5G 전략에 관심을 갖고 있고, 다음 달 스페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8에서도 이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와 관련해 장관들을 질타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안은….
“혹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자리가 줄어든다 하는데 일자리는 사라지는 게 아니고 더 가치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 간다. 그곳이 어디인지를 예측하는 것과 기존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을 재교육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
―이와 관련해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생기고 역할도 커졌는데 어떤 변화가 있게 되나.
“올해 한국의 R&D 예산이 19조7000억 원으로 국가 규모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그간 R&D 예산이 국민 삶에서 괴리돼 있는 부분이 많았다. 국민의 삶 속에 ICT와 R&D가 들어와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다. 질병 태풍 등 안전 문제를 과학으로 예측해 예방하고 미세먼지 등 환경 문제도 해결하자는 얘기다. 또 그간 정부 R&D 예산이 부처마다 중복된 것이 많아 비효율적이었는데 과기혁신본부가 예비타당성 조사 권한도 가지게 된 만큼 통합 조정 기능을 강화할 것이다.”
―과거 정부들도 규제를 없애겠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현 정부는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그간 규제를 없애려 해도 관련 부처가 많으면 힘들었다. 지금은 다른 부처의 규제라도 일단 노출시켜 총리실이 해결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3개월 후 대통령이 규제 혁신 이행 상황을 챙길 때 보면 그 강도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 1951년 부산 출생
△ 동래고, 부산대 수학과
△ 1997~2003년 LG전자 정보화담당 업무혁신담당 상무
△ 2004~2006년 LG CNS 사업지원본부장, 금융 ITO사업본부장 부사장
△ 2006~2008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NIPA) 원장
△ 2010~2012년 포스코ICT COO 겸 IT서비스 본부장, 포스코경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2016~2017년 더불어민주당 온·오프네트워크정당추진위원장, 디지털소통위원장
▼ “가상통화 규제하되 블록체인은 분리해 육성” ▼
“블록체인 기술이 숲이라면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는 숲에 있는 나무와 같다. 아까시나무가 너무 크면 주변 숲을 망치게 되듯, 숲을 건강하게 가꾸기 위해 투기의 온상이 되어버린 가상통화를 규제하려는 것이다.”
최근 가상통화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상통화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숲을 잘 가꾸기 위해 그 나무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거나 주변에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지만 뽑아버리는 방법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가상통화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돼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의 잠재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블록체인은 ‘중개자 없이 개인 간(P2P) 거래’를 돕는 기술로 가상통화도 이를 기반으로 한다.
유 장관은 “가상통화 규제는 다른 부처가 집중하고 있다”며 과기부는 가상통화 규제보다는 블록체인 기술 육성에 집중할 것임을 강조했다. 과기부는 이달 24일 정부 업무보고에서 올해를 블록체인 기술 확산의 원년으로 삼고 블록체인 육성을 위해 142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1∼6월) 기본계획도 수립한다. 유 장관은 “가상통화와 블록체인 기술을 분리해서 다뤄야 한다”며 “블록체인은 아직 세계적 강자가 없는데 잠재력은 매우 크다”고 말했다.
한편 유 장관은 가계 통신비 인하 문제를 소득 주도 성장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그는 “소득 하위 20% 계층의 소득이 1% 올라가면 향후 5년간 경제성장률이 38% 올라간다”며 “소득 하위 계층의 소득을 늘릴 때 소비 진작 효과가 있는데 통신비를 줄이는 것이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단말기 완전자급제(제조업체에서 휴대전화를 산 뒤 통신사에 별도로 가입하도록 하는 제도)와 보편요금제에 대해서는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 시민단체 등이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를 만들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협의회는 26일 7차 회의를 열었지만 당사자 간 견해차가 커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달 9일 추가 논의를 하기로 했다.
인터뷰=배극인 산업1부장·정리=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