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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에서]남녀 혐오논쟁만 키운 데이트폭력 설문

입력 | 2018-01-31 03:00:00

“서울 여성 10명중 9명 폭력 경험… 피해자 절반이 상대와 결혼” 발표
男도 女도 “조사방식 이해 안돼”




‘서울 여성 10명 중 9명은 데이트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 그 피해자 10명 중 절반은 상대방과 결혼했다.’

서울시는 30일 이 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여성 10명 중 9명이나 데이트 폭력을 당했는데 그 상대와 결혼까지 했다니….’ 여성인 기자도 선뜻 수긍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발표를 보도한 인터넷 기사에는 조사의 신뢰성을 따져 묻는 댓글이 수천 건 올라왔습니다.

결과에 공감하지 못하는 남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마음에 안 들면 범죄자로 만드는 ‘김치년’” 등 여성을 비하하는 글을 적었습니다.

결과에 공감하지 못한 건 여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여성만 욕먹게 하는 설문조사” 등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급기야 ‘여혐(여성혐오)’ 대 ‘남혐(남성혐오)’ 논쟁이 불붙었습니다.

“선물 받고도 ‘당했다’고 떠드는 페미니즘 김치년은 맞아야 정신 차림”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글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러자 “반성 없는 ‘한남충(한국 남자 벌레)’” 등 남혐 글로 받아칩니다.

도대체 어떻게 조사한 건지 알아봤습니다.

시의 의뢰를 받은 여론조사업체는 자신들이 보유한 온라인 여성패널 2000명에게 e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설문에는 데이트 폭력을 당했는지 묻는 항목이 없습니다. 대신 ‘옷차림을 간섭하거나 제한했다’ ‘누구와 함께 있는지 항상 확인했다’ 등을 묻습니다. 이 문항에 ‘전혀 없다’로 답하지 않는 한 응답자는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여성으로 집계됩니다.

시는 “데이트 폭력의 범주를 ‘행동 통제’로까지 넓게 잡았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자는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데이트 폭력은 분명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얻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특정한 의도에 유리하도록 설문을 구성했다는 의심을 받는다면 결과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