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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여중생 살해 이영학 “1심에선 사형 피하고 2심서 싸울것”

입력 | 2018-01-31 03:00:00


“명랑하고 쾌활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착한 딸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가슴에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딸이었다. 하지만 이제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었다. 그 대신 아버지의 눈앞에는 사랑하는 딸을 추행하고 살해한 이영학(35)이 서 있었다. 아버지가 이영학을 바라보며 말했다.

“죽이고 싶습니다.”


○ “이영학 부녀 모두 사형시켜 달라”

30일 오후 3시 서울북부지법 702호 법정.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의 결심공판이 열렸다. 지난해 9월 이영학에게 희생된 여중생(당시 14세)의 아버지 김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씨가 이영학 재판에 참석한 건 처음이다. 증인석에 선 김 씨 오른쪽으로 하늘색 수의를 입은 이영학과 옅은 녹색 수의를 입은 딸 이모 양(15)이 변호인과 함께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김 씨가 말하는 동안 두 사람은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김 씨는 딸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저희 부부는 금방이라도 활짝 웃으며 들어오는 딸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고통스러워 당장이라도 집을 떠나고 싶습니다. 죽어서 돌아온 딸아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엄마 아빠를 얼마나 찾았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집니다.”

이어 김 씨의 어조가 강해졌다. “억울하게 죽은 제 딸을 위해 이영학과 이○○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 주십시오. 사형을 꼭 집행해 주십시오. 이영학 부녀는 죽음으로 제 딸에게 사죄해야 합니다.”

검찰은 “범행하는 피고인 모습을 떠올리면 치가 떨린다. 피고인이 죽는다고 해서 여중생이 살아날 수 없지만 더 큰 범죄를 막고 사회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이영학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딸 이 양에게는 “미성년자이지만 모든 걸 판단할 수 있는 나이”라며 장기 7년에 단기 4년형을 구형했다. 소년법에 따라 미성년자는 장기와 단기로 나눠 형기의 상·하한을 두는 부정기형을 선고한다.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이영학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더 깊숙이 숙였다. 표정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후진술 순서가 되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이영학은 먼저 여중생 가족에게 용서를 구했다. 한편으로 재판장에게 선처를 호소했다. 이영학은 “이 못난 아비가 딸을 위해 살고 싶다. 다시 살고 싶다. 법의 엄중한 심판하에 품어 달라”고 말했다. 황당한 주장도 내놓았다. 그는 “검찰이 협박했다. 때리려고 했다. 폐쇄회로(CC)TV 공개하면 나온다. 한 사람의 장애인이 죽어가는 걸 막아 달라.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중생 아버지는 표정이 일그러진 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방청석에선 “완전히 미친놈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이영학의 딸 이 양은 유족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 양의 변호인은 “이영학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어 소극적으로 거부하다 범행했다. 참회할 수 있도록 선처 바란다”고 말했다.

○ 이영학의 편지·반성문 살펴보니

이날 최후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이영학은 출소 의지가 강했다. 동아일보는 이영학이 옥중에서 가족과 법조인 등에게 쓴 약 100장 분량의 편지 20여 통과 청와대에 보낸 탄원서 반성문 등을 입수했다. 이영학은 감형을 위해 자신과 딸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듯했다.

편지 등에 따르면 이영학은 매일 10시간씩 반성문을 썼다. 1심 재판 중 반성문 300장을 쓰는 게 목표였다고 한다. 이영학은 딸에게 “○○이가 아빠 살려줘야 돼. 아가, 재판 때 우리 판사님한테 빌어야 해. (그래야) 우리 조금이라도 빨리 본다”고 적었다.

또 “1심 무기징역 받고 2심에서 싸우겠다. 1월에 1심 선고하고 3월에 2심 들어가니 항소 준비해 달라…. 1심 선고 후 일주일 뒤 전 항소심 갑니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심신 미약이 인정되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할 계획도 덧붙였다. 경찰과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했기에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감형 전략’을 9개로 나눠 정리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영학은 시종일관 심신미약을 주장하고 있지만 모친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알고 한 행위’임을 분명히 했다. 이영학은 편지에서 “약 먹고 했어도 알아. 나중에 (피해 여중생 가족과) 합의도 해야 된다”고 적었다. 또 장애인 단체와 연계할 계획도 밝혔다. 심신이 미약한 장애인이 저지른 범행임을 강조해 감형 받으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영학은 ‘옥살이 이후 삶’도 계획하고 있었다. 출소 후 푸드트럭을 운영할 것이고, 딸에게는 가명을 지어주며 새 삶을 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영학은 딸에게 “너무 걱정하지마. 소년부 송치가 된다더라. 오히려 그곳은 메이크업, 미용 등을 배울 수 있는 곳이야. 걱정 말고 기회로 생각해”라고 적었다. 이어 “구치소는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준비하는 곳이야. ○○이 나오면 할머니가 법원에서 이름 변경해 줄거야”라고 적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영학은 자신의 삶을 망라한 자서전 집필 계획도 갖고 있었다. 편지에 따르면 이영학은 ‘나는 살인범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쓰고 있다고 한다. 딸에게 “아빠가 이곳에서 책 쓰니까 출판 계약되면 삼촌이 집이랑 학원 보내줄 거야. 1년 정도 기다려. 우리가 복수해야지”라고 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배준우·김예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