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스웨덴에서도 90대 고령 창업주가 정 명예회장과 같은 날 별세했다. 세계적 가구 브랜드 이케아의 창립자 잉바르 캄프라드는 향년 92세로 고향인 스웨덴 남부 스몰란드의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했다.
동시대를 사는 동안 서로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지만 삶의 궤적은 많은 부분 닮아 있었다. 10대 소년 시절부터 사업에 눈을 뜬 두 사람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며 지금의 기업을 일궈냈다. 회사가 커진 만큼 주름이 깊어졌지만,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청년사업가의 열정을 놓지 않았다.
1999년 77세에 명예회장이 된 정 명예회장은 팔짱을 끼고 노후를 즐기는 대신 현장을 찾았다. 서울 종로구에 집무실을 마련해 놓고 100세가 가까워 온 최근까지도 매일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며 경영을 살폈다. 불편한 거동 탓에 비서의 등에 업히면서까지 생산 현장을 챙겼다. 캄프라드 창립자 역시 80세가 훌쩍 넘은 나이까지 경영 일선에서 직접 회사를 챙겼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죽을 시간조차 없다”고 말했다.
가진 부(富)에 비해 지나치게 검소한 성품도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반평생 ‘회장님’ 소리를 들어왔지만 두 사람은 허례허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 명예회장은 1998년식 구형 벤츠를 몇 년 전까지 타고 다녔다. 빈소에서 만난 일양약품 직원은 “명예회장님 운동화와 구두 모두 10년 넘은 것들”이라며 “식당에서 드시다 남은 소주를 챙겨 오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캄프라드 창립자도 1993년 구입한 볼보 승용차를 최근 교체하면서 “아직 탈 만한데 왜 바꿔야 하느냐”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지독한 짠돌이’였던 두 창업주는 고통 받는 사람들 앞에선 ‘헤픈 사람’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지역사회와 불우 청소년들을 돕는 데 매년 사비를 털었다. 지난해 경북 포항시의 지진 피해자들에게도 그는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캄프라드 창립자도 가족 재단을 설립해 매년 유럽연합(EU) 등에 거액을 기부했다.
두 창업주의 열정과 근검절약을 두고 젊은 세대들은 ‘지나간 시대의 덕목’이라든가 ‘그게 무슨 도움이 될까’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가로서 회사와 사회에 대한 무한한 책임과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정신은 2018년에도 유효하다. 한 푼의 상속세 없이 전달된 그들의 ‘마지막 유산’을 젊은 세대들은 반드시 상속받아야 한다.
강승현·산업2부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