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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 두 대통령… 케냐 막장 정치극

입력 | 2018-02-01 03:00:00

대선 불복 野지도자 비공식 취임식
야권연합 후보 작년 격전끝 패배
대법 “부정선거 무효” 판결내렸지만 재선거 보이콧해 與후보가 당선
“선거 도둑질” 20분간 선서하고 끝… 검찰총장 “대역죄 최대 사형” 경고
정부는 유혈사태 우려 애써 외면




부정선거 시비가 일었던 지난해 8월 케냐 대선에 야권연합 후보로 나섰던 라일라 오딩가(73)가 비공식적 대통령 취임식을 열어 논란이 일고 있다. 우후루 케냐타 현 대통령(57)이 지난해 11월 취임해 아직 ‘국정 허니문’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 한 명이 대통령을 자처하는 막장 정치극이 펼쳐진 것이다.

○ 한 지붕 두 통령?!

오딩가와 야권연합 국민슈퍼동맹(NASA)은 지난달 30일 오후 수도 나이로비의 우후루 공원에서 비공식 대통령 취임식을 열었다. 수천 명의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오딩가는 오른손에 성경을 들고 “국민들의 높은 요구에 부응해 케냐공화국 대통령직을 수락한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케냐의 막장 정치극은 대선 과정에서 이미 예고됐다. 오딩가와 케냐타는 지난해 8월 대선 막판까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포인트 차 접전을 펼쳤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 결과 케냐타 후보가 54.27%를 득표해 44.74%에 그친 오딩가 후보에게 승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오딩가 측은 이에 불복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고 케냐 대법원은 한 달 뒤 “투명성과 검증 가능성이 결여됐다”며 대선 무효 판결과 함께 60일 내 재선거 실시를 명령했다.

그러나 오딩가는 “비리의 온상인 선관위에 대한 개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10월 대선 재선거 보이콧을 선언했다. 결국 오딩가 없이 치러진 대선 재선거에서 케냐타가 98.26%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문제는 38.84%에 그친 낮은 투표율이었다. ‘반쪽짜리 대통령’으로 취임해 국정 동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케냐타 정권은 커다란 리스크를 떠안았다. 오딩가와 야권연합은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오딩가를 진정한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별도 취임식을 계획해 왔다.

○ 후폭풍이 무서워


이날 취임식에서 오딩가가 모습을 드러낸 시간은 고작 20분 남짓. 대통령 선서를 낭독한 그는 앞선 대선 결과를 ‘선거 독재’와 ‘선거 도둑질’로 규정하는 짧은 연설을 남기고 행사장을 떠났다.

야권연합 내부에서도 분열이 감지됐다. 지난 대선에서 오딩가의 러닝메이트였던 칼론조 무쇼카 전 부통령을 비롯한 NASA 주요 지도부는 이날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오딩가는 “무쇼카가 추후 선서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지자들은 “반쪽짜리 취임식”이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총장은 오딩가가 비공식 대통령에 취임할 경우 ‘대역죄’에 해당하며 최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사전 경고했지만 이날 취임식이 진행되는 동안 케냐타 정부는 로키(low-key·조용히)로 관망했다. 오딩가에게 대역죄 혐의를 씌워 체포할 경우 유혈사태가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대선 이후 발생한 유혈사태로 지금까지 50명이 사망했다. 2007년 대선 당시에는 개표 부정 시비가 종족 간 유혈사태로 번지면서 1100명이 숨지고 6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기도 했다.

케냐타 정부는 불법인 오딩가 취임식의 생중계는 막았다. 케냐 통신청이 NTV, KTN, 시티즌TV 등 3개 민영 방송사에 오딩가 취임식 생중계를 금지하자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케냐 언론은 정부의 이 같은 조치를 비난하며 “전례 없는 언론 탄압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