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첫 국정연설]
“우리는 지금 ‘새로운 미국이 열리는 순간(new American moment)’을 맞고 있다. 아메리칸드림을 시작하기에 지금보다 더 나은 시기는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안전하고, 강하고, 자랑스러운 미국의 시대’를 선언했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워싱턴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장에서 취임 후 첫 국정연설을 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모든 미국 국민을 위해, 다시 위대한 미국을 만들기 위해, 명확한 비전과 의로운 사명감을 품고 전진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독설이나 비아냥거리는 어조를 내보이지 않았다. 역대 미 대통령 국정연설 중 3번째로 길었던 1시간 20분간의 연설에서 자신이 거둔 성과를 조목조목 짚으며 “민주당과 공화당의 화합”을 촉구했다. 안보와 대외무역에서는 강경한 정책 기조를 확인한 반면 이민정책과 미국 내 산업, 근로자 복지 지원에서는 타협안을 제시하며 정치색을 뛰어넘는 협력을 강조했다. CNN은 ‘한 손은 악수, 한 손은 주먹’이란 제목으로 그의 국정연설을 요약했다.
이어 “240만 개의 새 일자리를 창출해 실업 수당이 4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게 했으며 흑인과 히스패닉 실업률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취임 이후 경제 부문에서 거둔 성과를 확인했다. 트럼프는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줄여 미국 기업이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했다”며 “애플도 조금 전 미국에 총 3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2만 명의 추가 인력을 고용할 계획임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열심히 일하면서 자신과 미국을 믿으면 무엇이든 꿈꿀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얻을 수 있게 됐다”고 언급하며 “성장 배경, 피부색, 신념에 상관없이 미국의 모든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에 언제나 활짝 손을 내밀겠다”며 통합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었다.
이민 정책과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체류자 180만 명에게 시민권 취득의 기회를 관대하게 열어주겠다”며 “이민자 사회도 미국인 노동자와 가정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 이민정책으로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국경 경비를 강화하고 연쇄 이민을 막아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이민 정책을 전면적으로 개편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교통 등 사회 기반시설 건설을 위해 1조5000억 달러(약 1600조 원)의 투자 예산 의결을 의회에 요구했다.
그는 이어 “공정하게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무역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기존의 ‘나쁜 무역 거래’를 고치고 새로운 무역 협상을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논의 중인 한국 등의 무역 대상국에 대해 “무역 규칙의 강력한 집행을 통해 미국의 노동자와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할 것”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거듭된 선언에 대해 많은 의원들이 기립박수와 함께 “USA”를 연호했다.
외교안보 정책에서도 강경 노선을 견지했다. 트럼프는 “미국은 전 세계의 불량 정권, 테러리스트 그룹, 그리고 우리의 이익에 도전하는 중국, 러시아 같은 경쟁국과의 대립에 직면해 있다”며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한 힘이 미국을 방어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침략행위를 막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하고 현대화된 핵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교적 온건한 뉘앙스로 명확한 메시지가 전해졌지만 부정적 평가도 적잖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이 에너지 순수출국이 됐다’는 언급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 정책을 실천했다’는 발언은 실제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 의혹 등 여야 간 갈등이 첨예한 부분에 대해서는 해법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