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베르나르 스티글레르/아리엘 키루 지음/권오룡 옮김/140쪽·1만2000원/문학과지성사 가까운 미래의 자동화 시대, 임금제 노동의 종말을 예고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활동인, ‘일’의 의미 새롭게 규정하며 ‘기여 경제’의 수립 제안
4차 산업혁명 이후 노동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일자리 지키기’ ‘완전 고용’ 등이 여전히 사회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저자들은 고용과 임금 노동제를 바탕으로 한 과세와 사회보장제도 등 사회 시스템의 몰락을 인정하고, 로봇(자동화 기계)이 높인 생산성의 성과를 기여에 따라 분배하는 새로운 체제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프랑스 기술철학자로 퐁피두센터 혁신연구소장인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와 저널리스트인 아리엘 키루의 2014년 봄 대담을 담은 책이다. 스티글레르는 “(경제시스템의 주변부를 제외하고) 향후 20년 안에 고용에 기초한 사회가 완전히 소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책에 따르면 2013년 프랑스 정부가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로봇 산업은 산업직의 고용을 없앨 것이다. 그러나 기술은 ‘파르마콘(Pharmakon)’, 즉 약도 독도 될 수 있다. 저자는 ‘고용(emploi)’과 ‘일(travail)’을 구분한다. ‘고용’은 임금을 받고 하는 일로 표준화되고 기계적인 반복이다. 반면 일은 자신을 풍요롭게 만드는 활동이다. 기술 발전은 고용에서 일로 전환하는, 이른바 ‘기여 경제’로 이행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주장이다.
책에서 제안하는 기여 경제의 모습을 보자. 소득은 임금이 아니라 ‘기여 소득’으로 분배된다. 그건 “품위 있게 살고, 자신을 계발하고, 사회가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 앎의 형태들을 발전시키는 기반 위에서 모든 사람에게 지급되는 소득”이다. 교환과 시장은 “이익에 혈안이 된 소비자가 아니라 집단으로 이어진 아마추어 사이에서의 교환” “교환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상품 시장” 등으로 표현한다.
좋은 얘기다. 그런데 눈치챘겠지만, 이건 이미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선 것이다. 스티글레르 역시 “이것은 사실 혁명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책은 ‘어떻게(How)?’를 거의 공백으로 남겨둔다. 스티글레르는 프랑스 ‘예술인 실업급여제도(Intermittents du Spectacle)’를 기여경제의 단초가 되는 모델로 제시한다. 자세한 설명이 없어 아쉽지만, 시장에서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하는 예술인의 활동을 공적 재원으로 보상하는 제도로 보인다.
이런 제도가 소수 집단에는 실현될 수 있겠지만 사회 전체에 적용하려면 어디선가는 엄청난 부담을 져야 한다. 저자는 임금 노동이 사라질 것이라 보고 있으니, 결국 자본 소득의 상당 부분이 이전돼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파트너들과 결판이 날 때까지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다소 공허하게 다가온다. 아마 마르크스가 살아 있다면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하지 않을까.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