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은솔·고우균 메디블록 공동대표 국내 최초, 세계 1위 메디컬 암호화폐 ‘메디토큰’ 개발
[조영철 기자]
이 대표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수련한 영상의학과 전문의이고, 고 대표는 삼성전자에 다니다 경희대 치의학대학원에 들어가 치과의사 자격을 취득했다. 고등학교 동창인 이들이 블록체인 창업에 뛰어들어 새로운 암호화폐까지 만든 이유가 궁금했다. 1월 29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메디블록 사무실에서 이들을 만났다.
먼저 메디블록이 어떤 회사인지 궁금하다.
이은솔 대표(이하 이) “지금까지 의료정보는 병원이 각각 관리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서 검사 등을 받았다 해도 병원을 옮기면 처음부터 다시 진료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메디블록은 이와 같은 불편을 없애고자 의료정보를 병원이 아닌 환자에게 맡긴다. 환자의 진료 및 의료기록을 블록체인에 저장하고 병원이나 업체가 이를 열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공유되지만 의료기록은 더 안전하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운영돼 일반 서버에 저장하는 것에 비해 해킹 위험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료기록을 임의로 조작하는 일이 불가능하므로 의료기록의 신뢰성이 향상되는 효과도 있다.”
이 “원래 내 기반은 프로그래밍이었다. 프로그래밍 특기자로 서울과학고에 입학했다.”
고우균 대표(이하 고) “고등학생 때 수학을 좋아했지만 순수 학문으론 먹고살기 힘들 것 같아(웃음), KAIST(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부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프로그래밍을 공부했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석사과정을 한 뒤 삼성전자에 취업했다. 3년간 회사생활을 하다 경희대 치의학대학원에 다시 진학해 치과의사 자격을 취득했다.”
질문이 잘못됐다. 왜 의사 자격을 취득했느냐고 묻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이 “고등학생 때 여러 프로그래밍 대회에 나가 입상했고, 입상자들을 모아 프로그래밍 교육을 시키는 계절학교에 가게 됐다. 그곳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국제정보올림피아드에 내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와 전혀 달랐다. 정말 먹는 것, 씻는 것, 사람 만나는 것 등에 전혀 관심 없고 오로지 프로그래밍에만 빠진 친구가 많았다. 그런 학생들과 경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의대 진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의료와 공학을 접목하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의대에 진학하기로 했다. 물론 부모님의 설득도 있었다.”
고 “나도 이유는 비슷하다. 프로그래밍에 모든 것을 바친 친구들과 경쟁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석사학위를 취득한 해가 2008년인데 당시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있었다. 입사해서도 프로그래밍이나 IT에만 매달리는 것이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에 늦은 나이에 치의학대학원에 입학했다.”
경쟁을 피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자 의료계에 발을 들였지만 다시 IT 창업으로 돌아섰다.
이 “의대에 다닐 때도 프로그램이나 IT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의대생은 대부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나는 IT업체로 갔다. 영상의학을 전공으로 택한 것도 IT 때문이다. 2008년 본과 4학년 때 서울아산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서울아산병원은 이미 인공지능(AI)을 의료현장에 접목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영상의학이 의료와 IT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 서울아산병원에서 수련 과정을 밟았다.”
고 “오래전부터 벤처 창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확신이 서는 아이템이 없었다. 스타트업이 도움을 요청해오면 개발 관련 조언을 하는 정도로 업계와 관계를 맺었다. 발가락만 담갔다고나 할까. 치과의사가 된 이후에는 의료정보와 IT를 합치면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의료 시스템을 만들어 의료계와 산업을 효율적으로 연계하면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봤다.”
의료와 관련된 IT 창업 성공 사례가 드문 것으로 안다.
이 “의료인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진료에 집중하다 보니 진료 외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다. 일부 불합리한 시스템이 있어도 그냥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고 “병원 내·외부에서 불합리한 전산시스템을 고치려는 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병원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 탓에 변화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외부에서 바꾸려 해도 좋은 결과를 내기 힘들다. 개발자들이 진료과정을 잘 모르니 아무리 좋은 기능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실제로는 사용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태반이다. 우리의 장점은 실제 병원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으로 열린 창업 기회
[조영철 기자]
이 “2016년 만나 창업 준비를 했다. 방향은 의료와 IT를 융합한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이었다. 그런데 헬스케어 프로그램이 대부분 병원 위주로 짜여 있었다. 병원에서 의료기록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은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하려면 보험사의 눈치를 봐야 한다.”
처음부터 블록체인 관련 창업을 고려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고 “의료정보가 있어야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뭔가를 만들 수 있는데, 병원이나 보험사를 거치지 않고서는 의료기록을 얻을 수 없었다. 의료정보를 얻는다 해도 ‘믿을 만한 정보인가’ 하는 의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의사 혹은 병원이 자기들 상황에 유리하게 각자 고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뢰할 만한 의료정보인가라는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고민하다 블록체인을 떠올렸다. 환자가 블록체인을 이용해 자신의 의료정보를 직접 보관하고 활용한다면 의료기록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병원과 보험사를 설득할 필요도 없어진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니 단순히 새로운 헬스케어 프로그램 출시를 넘어서는 일을 구상하게 됐다.”
그렇다면 수익구조는?
고 “수익구조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메디토큰 개발은 그다지 가치가 높지 않은 프로젝트다. 메디블록은 의료정보 공유 플랫폼을 개발하고 초기 운영을 담당하는 일을 한다. 의료정보 탈중앙화 플랫폼이 완전히 갖춰지면 거기서 역할은 끝난다. 말하자면 메디토큰은 메디블록 소유물이 아니다. 다만 개발자로서 기여한 부분에 대해 메디토큰을 나눠 받는 것이 일단 수익의 전부다.”
이 “의료정보 공유 플랫폼이 완성되면 그를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사용료를 받는 것이 장기적인 수익구조가 되리라 본다.”
메디토큰 백서를 읽어보니 메디토큰 말고 MP(메디컬포인트)라는 개념도 있다. MP를 쌓으면 메디토큰과 교환할 수 있다고 하는데 맞나.
이 “메디토큰이 프로젝트 지분이라면 MP는 프로젝트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해 부여하는 것이다. 메디토큰을 많이 가진 사람은 투자로 프로젝트에 기여한 것이고, 프로그램에 새 정보를 들여오거나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으로 기여한 부분에 대해 보상으로 주는 것이 MP이다. MP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메디토큰으로 바꿀 수 있다.”
고 “현재 메디토큰 시가총액이 2억 달러가 넘는다. 이는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때 구성될 새로운 산업 생태계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글로벌 의료 분야 사업규모가 8조 달러(약 8561조 원)임을 생각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왜 일정 기간 기다려야 MP를 메디토큰으로 바꿀 수 있게 만들었나.
고 “메디토큰 총량이 한정돼 있어 내부 기여도를 측정해 바로 메디토큰을 나눠 주기 어려웠다. 일종의 완충재로 MP를 만든 것이다. 교환이 가능한 기간과 MP를 메디토큰으로 환전하는 비율은 프로젝트 론칭 전까지 계속 조정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메디토큰을 보유해야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메디토큰은 암호화폐인 동시에 의료정보 저장장치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출시 후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메디토큰이 필요하다.”
메디토큰에 김치프리미엄(한국 암호화폐시장에 실제 가치 이상 가격이 형성됐다는 뜻)이 많이 끼었다는 지적도 있다.
고 “김치프리미엄 이야기는 맞다고 본다. 하지만 그게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도 IT 쪽에서 오래 일했고 해외에서도 관련 공부를 했지만, 암호화폐 붐 전에는 한국이 IT업계에서 주목받은 사례가 한 번도 없었다. 삼성만 그나마 인정받는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암호화폐업계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해외 콘퍼런스에 가면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보는 눈빛이 달라진다. 물론 기술로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돈이 가장 뜨겁게 모이는 곳인 만큼 세계 각국 개발자들이 한국을 크게 신경 쓰고 있다. 우리도 한국에서 시작해 세계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 메디토큰이 세계 메디컬 블록체인 분야에서 시가총액 1위로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김치프리미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김치프리미엄이란 말이 나오는 지금이 국내 블록체인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적기다.”
이 “과거 우리가 블록체인을 이용해 의료데이터 사업을 한다면 블록체인이 뭔지 설명하는 데만 한참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블록체인에 대해 알고 있다. 플랫폼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함께하자는 투자자가 늘어난 것도 한국시장의 좋은 특수라고 본다.”
한국에서 암호화폐시장의 이미지가 점차 나빠지는 데다 정부가 규제를 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이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지 못할 정도로 규제할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제도화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길목에서 바른 목소리를 내며 정부 관계자들과 의견 조율을 해나간다면 상식선에서 규제가 이뤄지리라 본다. 하지만 유사수신 등 가짜 코인개발업자 등은 이 시장에서 빨리 쫓아내야 한다.”
고 “적절한 규제는 블록체인 업계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개발자 처지에서는 정해진 룰이 없는 것이 더 위험하다. 하지만 갑자기 이상한 제도가 생기면 사업 자체가 존립하지 못할 수 있다. 만약 한국에서 암호화폐 거래 금지 등 관련 사업이 어려울 정도로 규제가 시작된다면 일본이나 싱가포르 등 해외시장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다.”
김치프리미엄, 자랑스러운 타이틀메디토큰 백서에 따르면 올해 안에 의료정보 공유 플랫폼이 완성된다. 그 후 목표가 있다면?
고 “100% 완성이라기보다 사용 가능한 정도의 플랫폼을 선보이는 것이다. 추후 계속 업그레이드를 거쳐야 한다.”
이 “의료정보 공유 시스템을 내놓는다고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출시 후 이 시스템의 장점을 알리고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힘을 쏟을 예정이다. 특히 병원 등에서 자신들의 고유 권한을 빼앗긴다고 생각할 수 있어 지속적인 설득이 필요하다.”
고 “블록체인과 헬스케어 등 두 가지 키워드로 컨소시엄을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다. 처음에는 한국을 위주로 하겠지만 나중에는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목표다. 보험사, 병원, 의료인, 블록체인 관계자 등을 초청해 이 기술이 어떻게 의료계를 바꿀 수 있을지 논의하겠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콘퍼런스가 종종 열리고 있다.”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