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애거사 크리스티와 중동
1974년에 이어 지난해 말 리메이크돼 개봉된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열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어린 딸과 이집트로 떠나 피라미드를 보며 슬픔을 달랬다. 프랑스 기숙학교에서 신부 수업을 받은 애거사는 토키의 무도회장에서 만난 아치 크리스티 공군 중령에게 푹 빠져 급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1차 세계대전 중 애거사는 병원에서 약제사로 일하며 전쟁터로 떠난 남편을 기다린다. ‘독살의 여왕’으로 불릴 정도로 그의 추리소설에 독약이 많이 쓰이게 된 배경이다. 전쟁이 끝나고 남편이 귀환하자 그는 전업주부 모드로 전환한다. 비행장, 골프장 등 남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갔다. ‘구름 속의 죽음’ ‘골프장 살인사건’은 당시 경험을 반영한 작품이다.
어린 딸을 친정에 맡기고 남편과 떠난 유람선 여행은 환상적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호주-뉴질랜드-하와이-캐나다의 관광지를 구경하고 서핑을 즐겼다. 남편만 따라다니면 되었기에 지도를 볼 필요는 없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 인기를 끌며 짭짤한 수입이 생겼지만 런던의 금융인으로 잘나가는 남편과 예쁜 딸을 키우며 살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그에게 글쓰기는 부업일 뿐이었다.
그들은 바그다드로 갔다
무작정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 올랐다.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낯선 곳으로 홀로 떠나며 단단해졌다. 소설의 소재와 배경도 확장됐다. 특히 이라크 사막에서 본 일출과 아침 식사는 황홀한 추억으로 남았다.
이후 그는 중동의 유적지에서 안내를 해주던 14세 연하의 옥스퍼드대 출신 고고학자 맥스 말로윈과 사랑에 빠진다. 결혼한 두 사람은 매년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타고 프랑스 칼레, 파리∼스위스 로잔∼이탈리아 밀라노, 베네치아, 트리에스테∼크로아티아 자그레브∼세르비아 베오그라드∼불가리아 소피아∼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시리아, 이집트, 이라크 등 사막의 유적지를 답사했다.
죽음과의 약속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