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8000만원짜리 조형물 공모 반값 줄인뒤 “8000만원 기부해라” 작가에 5900만원… 돈빌려 재료비 내
조각가 박모 씨(50)는 2012년 부영주택으로부터 광주의 한 아파트 단지에 설치할 2억8000만 원짜리 미술작품 공모에 참여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박 씨는 이후 당선됐다는 연락을 받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만 해도 이 일이 큰 불행의 시작일 줄은 몰랐다.
부영은 박 씨에게 당선 직후 “아파트 단지 규모가 커서 작품 두 개를 설치할 계획이다. 다른 작가와 함께 당선작으로 선정됐으니 작품 가격을 절반인 1억4000여만 원으로 줄여 달라”고 사실상 통보해왔다. 박 씨는 당초 공모 금액인 2억8800만 원에 맞게 작품 크기 등을 구상했다. 반 토막 난 가격에 맞추느라 원래 설계한 크기의 70% 규모로 작품을 제작해야 했다.
하지만 작품 제작을 끝낸 박 씨에게 지급된 돈은 약속한 금액의 약 40%인 5900만 원뿐이었다. 박 씨는 “부영에서 계약하는 날 기부 각서를 가져왔다. 8000만 원가량을 기부한다는 각서에 서명해야 작품 값을 주겠다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서명을 했다”고 말했다. 부영은 박 씨에게 계약서만 주고 기부 각서는 회수해 갔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부영과 작성한 계약서에 작품 가격으로 1억4000여만 원을 받은 것으로 국세청에 신고가 된 까닭이었다. 소득세는 물론이고 인상된 건강보험료도 못 내 모든 은행계좌를 차압당했다. 박 씨는 결국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공사판 일용직 노동자로 나섰다.
박 씨는 부영의 이 같은 행태를 최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검사 구상엽) 조사에서 밝혔다고 한다. 검찰은 부영이 박 씨 등 미술가들을 상대로 작품 가격을 후려치는 등 ‘갑질’을 한 데 대해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77) 등 관련자들에게 횡령 혐의 등을 적용해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