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도쿄 특파원
역 남쪽 출구 앞 빌딩 입구는 취재진으로 북적거렸다. 들어가려 하자 나이 든 경비원이 막아섰다. 그리고 ‘취재를 원하면 아래 번호로 연락 달라. 개별 대응은 안 한다’는 공지문을 가리켰다.
홍보 담당자 휴대전화로 수십 번 전화했지만 연결이 안 됐다. 가상통화 거래소 코인체크가 입주한 건물 3층은 월 40조 원이 거래되는 곳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소박했다. 언론 대응은 폐쇄적이었다.
한국에선 일본의 가상통화 정책을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반론이 맞선다. 전자는 일본이 지난해 4월 법제화를 통해 가상통화를 결제수단으로 인정하고 제도권에 편입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금융청이 거래소를 관리하면서 이용자 보호를 강화하고 규제의 사각지대를 없앴다는 것이다. 후자는 가상통화가 제도권에 편입된 후 거래소들이 ‘법적 인정’을 내세우며 대대적으로 광고해 투자자와 투자금이 수십 배 늘었고 결과적으로 버블만 키웠다고 반론한다.
현재 단계에서 어느 쪽이 옳다고 단언하긴 힘들다. 다만 취재하며 받은 인상은 일본의 가상통화 시장이 정착 단계라고 보기 어렵고, 여전히 매우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금융청 담당자는 “정부는 가상통화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 제도화한 것은 2014년 거래소 마운트곡스 파산 후 제기된 이용자 보호의 필요성과 이듬해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돈세탁 방지 조치 권고 때문”이라고 했다. 정부가 가상통화 가능성을 인정하거나 거래를 장려하려고 법제화한 게 아니란 뜻이다. 그는 “필요한 규제를 만들고 철저히 감독 중”이라고 큰소리쳤지만 불과 사흘 뒤 코인체크 사태가 터졌다.
거래소는 취재가 힘들었다. 코인체크를 포함한 거래소 대부분은 홈페이지에 전화번호도 없었다. 번호가 나온 곳도 연결이 안 됐고, 문의 e메일에도 답이 없었다. 고객 돈 수천억∼수조 원을 관리하는 곳이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물론 일본이 선제적으로 정책을 마련했다는 점은 한국 정책 담당자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정책이 결과적으로 가상통화 보급에 정부가 앞장선 모양새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취재를 시작할 때 가상통화에 대해 알아야겠다 싶어 일본 거래소에 계좌를 만들고 한국 돈으로 2만∼3만 원씩을 들여 여러 종류의 가상통화를 사봤다. 칼럼을 쓰는 지금은 대부분 반 토막 나 있다. 디지털 시대에 안 맞는 아날로그적 발상일지 몰라도 남의 돈을 맡아 놓고 전화도 제대로 받지 않는 이런 곳에는 더 이상 돈을 넣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