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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이재용 집유… 특검 여론수사에 法理로 퇴짜놓은 법원

입력 | 2018-02-06 00:00:0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어제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구속된 지 353일 만에 풀려났다. 항소심 판결에서는 특검이 기소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액 중 대부분이 부인됐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는 “이 사건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본 1심과 판단을 달리한다”며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이 삼성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하고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 씨가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한 것”이라고 집행유예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삼성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 원은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또 1심이 뇌물로 인정했던 한국동계영재스포츠센터 후원금 16억 원도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최 씨의 딸 정유라 씨 승마 지원을 뇌물로 인정하되, 최 씨가 설립한 회사 코어스포츠에 보낸 용역대금 36억 원과 정 씨가 말을 공짜로 사용한 이익만 뇌물로 인정했다. 정 씨가 탄 말은 삼성 소유로 판단해 말 구입비용도 뇌물로 보지 않았다.

1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묵시적 포괄적 청탁이 있었다고 추정해 징역 5년을 선고한 데 대해 형사재판의 증거주의를 벗어났다는 비판이 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명시적 구체적 청탁은 물론이고 묵시적 포괄적 청탁도 인정하지 않았다. 청탁의 근거인 경영권 승계 작업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뇌물로 인정한 것마저도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요구가 먼저 있었고 그 요구를 삼성이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들어준 것으로 봤다. 이것이 엄격한 법리에 합치하는 판단일 것이다.

항소심 판결로 특검의 수사가 무리했다는 것이 입증됐다. 기업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검찰은 강요라고 봤지만 특검이 수사를 이어받아 뇌물로 규정했다. 특검은 유독 삼성이 낸 출연금만 뇌물로 기소했다.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청탁 프레임은 삼성의 소유구조를 조금만 알아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나 특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등을 이런 가공의 프레임에 끼워 넣었다. 권력자의 요구에 마지못해 돈을 준 기업을 전형적인 뇌물사건의 부패 기업처럼 취급했다. 그렇게 여론몰이를 하면서 한편으로 여론에 끌려다녔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이나 영재센터 후원금은 뇌물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이 부회장은 그 때문에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정 씨 승마 지원은 강요에 의한 수동적인 뇌물공여였다고 하지만 이 역시 법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이 부회장은 1년 가까운 수감생활을 하면서 글로벌 기업 삼성의 처신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이제 정경유착이 아니더라도 정경유착으로 오인받을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삼성이 앞장서서 끊어야 한다. 삼성은 경쟁력에서만이 아니라 기업 윤리에서도 일등 회사가 돼야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국민의 존중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