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지킨다, 족집게 ‘생존 수칙’]<1> 화재는 가까이에 있다
얼마 전 불이 났던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 설치된 소화기는 제조일자가 ‘1988’로 표시돼 있고 점검표도 달려 있지 않다(왼쪽 사진). 그나마 다른 소화기에는 점검표가 달려 있었지만 아무 내용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하루 뒤 A아파트를 찾았다. 지하에는 멀티탭이 공중에 걸려 있었다. 통신 케이블은 뒤엉켜 있었다. 소화기 9개 중 진화에 쓰고 남은 건 7개. 그중 4개는 사용연한(10년)을 넘긴 상태였다. 제조일자가 ‘1988’로 표시된 것도 2개였다. 입주가 1989년 시작됐으니 아파트 완공 때 들여온 것으로 보인다. 점검표가 붙어 있지 않거나 있어도 아무 내용이 없었다.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에 의해 지난해 1월부터 모든 분말소화기는 제조일부터 10년만 사용이 가능하다. 기간이 넘으면 성능검사에 합격한 제품만 1회에 한해 3년 더 쓸 수 있다.
지난해 12월 실시된 아파트 소방점검 때 ‘30년 묵은 소화기’는 적발되지 않았다. 소방서는 아파트 측의 ‘셀프 점검’ 결과만 보고받았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각 동 경비원이 1, 2개월에 한 번씩 소화기 압력이 정상인지 흔들어 본다”고 말했다.
지난달 화재로 일가족 3명이 숨진 서울 은평구 B아파트. 지은 지 30년 된 곳이다. 2일 만난 주민 이모 씨(64)의 집은 불이 난 가구와 멀지 않다. 이 씨는 “한번 불이 났으면 뭔가 대비하는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흔한 안내문 하나 없다. 점검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들은 오히려 “뭘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며 취재진에게 물었다. 한 건물의 소화기 45대 중 41개는 10년이 넘었다.
경기 수원시 C아파트의 하얀 외벽에는 그을음이 시커멓게 남아 있었다. 지난해 12월 22층에서 발생한 화재 탓이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화재 후 단지 곳곳에 ‘화재위험 밤낮 없고 화재예방 너나 없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하지만 기본적인 소화기 위치나 작동 요령을 모르는 주민이 많았다. 고령자가 많이 살지만 이에 맞춘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주민 김모 씨(77·여)는 “소화기가 집에 있지만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안보겸·이지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