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법, 자기 결정권 제한
얼마 전 이 씨 부부가 재준 군의 임종이 가까워지면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자고 약속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4일 전면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재준 군과 이 씨 부부는 미리 연명의료 포기 의사를 밝힐 수 없다. 포기 의사를 밝히려면 환자가 성인이거나 암 등 특정 질환을 앓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재준 군이 실제 사망에 임박한 상태(임종기)가 돼야만 포기 의사를 의료진에 통보할 수 있다. 이때 포기 의사 확인서와 가족관계증명서 등 각종 서류를 내야 한다. 이 씨는 “작별 인사를 나눠야 할 마지막 순간 행정 절차에 시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새 법이 지정한 네 가지 질환(암, 만성 간경화,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말기 판정을 받은 미성년자는 숨지기 수개월 전부터 부모 등 친권자의 동의를 얻어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다. 아이가 너무 어려 연명의료 중단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식이 없다면 부모가 대신 계획서에 서명할 수 있다.
문제는 재준 군과 같은 희귀질환 아동이다. 희귀질환 아동은 임종기 판정 뒤 숨을 거두기까지 시간이 성인보다 짧다. 그만큼 성인 희귀난치성 질환자처럼 사전에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담은 연명의료의향서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성인은 질환의 종류나 경중과 관계없이 전국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어디에서나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 의사 1명만 확인해주면 실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계획서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
김민선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영국 등 선진국에선 의료진이 미성년 환자에게 건강 상태를 알리지 않고도 부모가 동의하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며 “환자와 부모가 마지막 순간 행정 절차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지 않게 하려면 의향서 작성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