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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해학에 버무린 셰익스피어… 세계가 응답했다

입력 | 2018-02-06 03:00:00

해외서 사랑받는 연극 ‘템페스트’ 재공연… 극단 ‘목화’의 오태석 연출
2011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공식 초청받은 첫 한국 연극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이야기에 삼국유사의 가락국기 덧입힌 작품
“한국 젊은이들과 셰익스피어,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




오태석 연출가는 6·25전쟁 당시 경무대 법무관이던 아버지가 인민군에 의해 납북된 사건이 자신의 인생을 연극판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그는 “맨얼굴로 사는 세상은 무서웠고, 삶을 달래고 위로해주는 허구의 세계를 갈망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란 말을 몸소 증명하는 연극인이 있다. 연기파 배우 유해진 손병호 성지루 김응수 장영남 임원희 박희순 정은표 등을 낳은 극단 ‘목화’의 수장 오태석 연출가(78)다.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한국적 색채로 풀어내 수작을 완성하는 것은 그의 오래된 장기다.

제48회 동아연극상 대상작이자 2011년 한국 연극으로는 처음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을 받은 극단 목화의 ‘템페스트’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템페스트’를 연출한 그를 2일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만났다.

오 연출가는 셰익스피어가 쓴 템페스트의 기둥 줄거리를 가져와 삼국유사에 수록된 가락국에 대한 역사서 ‘가락국기’를 덧입혔다. 원작의 주인공 밀라노 영주 프로스페로는 가락국의 8대 왕 지지왕으로, 그를 몰아낸 나폴리왕 알론조는 동시대 신라 20대 왕인 자비왕으로 바꿨다. 극의 배경도 이탈리아 지중해에서 한반도 남해안으로 옮겼다.

왜일까. 그는 “영국인인 셰익스피어도 극중 배경을 이탈리아로 바꾸는데, 난들 한국으로 못 바꿀 게 뭐가 있나 싶더라”며 “무엇보다 한국 젊은이들이 셰익스피어 할아버지를 좀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한국적 정서로 풀어낸 극단 목화의 ‘템페스트’. 서울 남산국악당 제공

그의 작품이 지닌 특징 중 하나는 대사 대부분이 3·4조, 4·4조의 우리말 운율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다. ‘템페스트’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말이 3·4조, 4·4조로 옮겨졌을 때 접촉력과 삼투력이 가장 좋아요. 관객과 작품이 가장 숨쉬기 좋다고 할까요. 우리말이 지닌 생략과 압축의 미학이 가장 잘 담기는 구조예요.”

갓 쓰고 한복을 입은 배우, 부채춤 등 한국적 춤사위가 극 사이사이 스며든 그의 ‘템페스트’는 해외 팬들이 특히 사랑하는 작품이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물론이고 뉴욕 라마마 극장, 칠레 산티아고 아밀페스티벌 등에 초청받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서울 공연이 끝나면 바로 페루 리마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초청돼 28일과 3월 1일 이틀간 공연될 예정이다.

해외에서 극단 목화의 ‘템페스트’가 인정받는 이유는 뭘까.

“우리 선조들은 생략, 비약, 의외성, 즉흥성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웃음의 해학을 뽑아냈어요. ‘템페스트’ 곳곳에 이런 선조들의 지혜를 숨겨놓았죠. 비록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이지만 우리의 해학이 자막과 무대 위 그림을 통해 충분히 설명됐기 때문이 아닐까요.”

‘템페스트’에서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포인트는 뭘까. 오 연출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섬의 원주민으로 프로스페로의 노예가 된 원작의 칼리반을 머리가 둘 달린 쌍두아로 형상화한 점을 꼽았다.

“머슴으로 12년이나 부려먹었으면 그에게 자유를 줘야죠. 원작에선 프로스페로가 칼리반에게 은혜를 갚지 않아요. 이번 작품에 일부러 칼리반을 쌍두아로 만들었습니다. 프로스페로가 도술을 통해 쌍두아를 분리시킴으로써 노예를 구제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하하.”

이뿐만 아니다. 두 개의 머리가 러닝타임 내내 계속 입씨름을 벌이는 쌍두아는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염두에 둔 그의 ‘시적 장치’이기도 하다. 21일까지 서울 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 1만8000∼3만 원. 02-2261-0500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