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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반대 뒤엉킨 묵호항… 北단원들, 만경봉호에서 안내려

입력 | 2018-02-07 03:00:00

[北 예술단 도착]




北예술단 태운 만경봉호 동해 묵호항 입항 평창 겨울올림픽 북한 예술단 본진 130여 명을 태운 북한 만경봉92호가 6일 강원 동해시 묵호항에 정박해 있다(오른쪽 사진). 11시간의 항해 끝에 도착한 북한 예술단원은 이 배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북한 예술단원들이 한국의 바깥 풍경이 궁금한 듯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동해=박영대 sannae@donga.com·최혁중 기자

6일 오후 5시경 강원 동해시 묵호항에 들어온 하얀 화물 여객선의 마스트(Mast·선체의 중심선상 갑판에 수직으로 세운 기둥)에는 붉은색 인공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2002년 9월 부산 아시아경기 이후 15년 5개월 만에 남한을 찾았지만 모습은 그때와 크게 변하지 않은 북한 선박 만경봉92호(9627t급)였다.

북한 예술단 본진 130여 명(예술인 114명)을 태운 선박은 이날 오전 6시경 함경남도 원산을 출발해 약 11시간 만에 항구에 도착했다. 체감온도 영하 7도의 혹한 속에 부두는 한반도기를 들고 환영하는 인파와 태극기를 든 보수단체가 뒤엉켜 서로 비난을 퍼붓는 바람에 혼란스러웠다. 16년 전 부산을 찾았을 때 선내 모습이 공개될 정도로 이 배는 남북 교류의 상징 중 하나였지만 이날은 남남 갈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 만경봉호 주변에 비행금지구역 설정까지

보수단체 시위 보수단체 회원들이 6일 강원 동해 묵호항에서 만경봉92호 입항 반대 기자회견을 연 뒤 인공기와 김정은 사진을 불태우자 경찰이 소화기 분말을 뿌리고 있다. 동해=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양곡과 시멘트 등 주로 화물을 운송하는 묵호항에는 낮부터 속속 사람들이 몰렸다. 현송월이 이끄는 삼지연관현악단의 방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원정 시위대들이 찾아왔다. “환영한다” “돌아가라”는 외침이 뒤엉켰다. 일부 보수단체 회원은 인공기와 한반도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사진을 소각했고 경찰이 급히 불을 끄는 소동도 벌어졌다.

만경봉92호는 조용했다. 남성 선원들이 갑판으로 나와 정박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을 뿐 대부분의 선실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진 상태였다. 한 북측 인사는 카메라를 들고 나와 이런 소동이 벌어지는 부두 주변을 촬영하기도 했다.

정부는 배가 도착하기 1시간 전부터 묵호항 일대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임시 설정해 헬기와 드론의 비행을 차단했다. 취재진의 근접 취재도 막았다. 단원들은 도착한 뒤에도 한참을 내리지 않았고 예정됐던 환영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통일부는 오후 9시 반경 “예술단 본진은 오늘 하선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발표했다. 보수단체 시위와 단원들의 뱃 멀미 등으로 일정이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술단은 8일 강원 강릉아트센터, 11일 서울 국립극장 공연을 앞두고 있다.

○ 김영남, 제재 대상인 고려항공 타고 오나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만경봉92호에 대해 “2002년 아시아경기 등 전례에 준해서 편의를 제공할 예정”이라며 음식, 기름, 전기 등을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의 독자 제재인 5·24조치의 예외를 인정해 입항을 허가한 데 이어 각종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 하지만 통일부는 1시간여 뒤 기자단에 휴대전화 문자를 돌려 “편의 제공과 관련해 북측이 요청한 사실도 없고 (이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도 없다”고 말했다. 아직 북측의 정식 요청도 받지 않았는데 먼저 “우리가 제공해 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논란이 되자 급히 취소한 것이다.

논란 끝에 만경봉92호 입항을 수용한 정부는 이젠 고려항공 운항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9일 방남하는 고위급 대표단 단장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아흔 살의 고령인 만큼 고려항공 편으로 이동하겠다고 제안하면 난감해진다. 고려항공이 미국의 독자 제재 대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마식령스키장 방문 시 이용한 우리 전세기에 이어 또다시 미국에 예외 인정을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아직 북에서 고위급 회담과 관련된 항공편 이용 제안을 하지는 않았다. 예단하기는 이르다”고 말을 아꼈다.

정부는 김 위원장과 함께 오는 다른 대표단원에 2010년 천안함 폭침 배후로 알려진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포함돼도 이를 수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부 당국자는 “대화와 관련해서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이 열려 있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일국 체육상 등 북한 민족올림픽위원회(NOC) 관계자 4명, 응원단 229명, 태권 도시 범단 26명, 기자단 21명 등 총 280명이 7일 오전 9시 반경 경의선 육로를 통해 방남한다. 북한 응원단의 경기장 입장료만 10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입장권 금액이 전체적으로 높아 북한 응원단 입장료 부담도 상당하다. 강원도 등과 협의해 부담 비율을 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인찬 hic@donga.com / 동해=박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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