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아일보]<23>독립유공자 후손 박원재 씨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부친의 항일 운동 기록을 찾은 박원재 씨가 보훈연금을 모아 동아꿈나무재단에 1억 원을 기부한 사연이 담긴 2006년 본보 기사를 들고 웃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역사에서 잊혀진 아버지의 명예를 찾아 드리고 싶었다. 성인이 되고 난 뒤 조상의 뿌리를 확인하는 일이 일생의 목표가 됐다. 그때부터 1994년 동아일보에 기사가 실리기 전까지 24년간 아버지의 독립운동 기록을 찾아 헤맸다. 일제강점기에 남겨진 기록을 찾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 국사편찬위원회, 정부기록보존소를 비롯해 일본 중국까지 안 가본 곳이 없다. 동아일보 기사가 나기 1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기신 유언도 “아버지 기록을 꼭 찾아 달라”는 말씀이었다.
본보 1994년 8월 16일자에 ‘항일운동 선친 기록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박원재 씨의 사연(왼쪽). 보도 이후 보훈처가 박 씨의 부친 박구진 씨의 항일운동 기록을 찾아내 가족의 평생 소원이 이뤄졌다는 사연이 1주일 뒤인 8월 23일자에 실렸다.
“만나 보니 허튼소리 하는 사람 같진 않던데…. 젊은 사람이 고생 많이 했는데 소원풀이나 해주시오”라며 당시 사회부장에게 내 인터뷰를 실어주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서야 듣게 됐다. 1994년 광복절 다음 날, ‘항일운동 선친 기록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내 인터뷰 기사가 동아일보에 크게 실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눈물 먹은 목소리로 김 부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록을 찾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기사를 내면서도 사실 반신반의했다는 김 부국장도 내 일처럼 기뻐해줬다. 첫 기사가 나간 지 일주일 뒤인 8월 23일 선친의 항일 기록을 찾았다는 후속 보도가 동아일보 지면에 실렸다.
마침 그달 28일은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전주의 이름 없는 야산에 묻힌 아버지의 묘소에 온 가족이 모였다. 집안 형님들은 “우리 막내가 아버지 기록 찾아 주려고 태어났나 보다”라고 하셨다. 광복 50주년인 1995년 8월 15일 아버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그 다음 해 아버지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실 수 있었다.
동아일보와의 인연은 이게 끝이 아니다. 보훈연금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또 다른 인생 목표를 실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연금을 모아 어렵게 살고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기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창 아버지의 기록을 찾을 때 몇몇 사람은 “연금이 탐나서 그러느냐”고 우스갯소리를 던지곤 했다. “연금 욕심은 전혀 없다.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나의 대답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 주고 싶었다. 연금이 나오기 시작한 후 형님들에겐 “원래 없었던 돈이니 계속 없었던 셈 치자”고 양해를 구했다.
11년간 모은 연금에 사업으로 번 돈을 보태 1억 원을 만들었다. 기부처를 고민하다 아버지의 기록을 찾아준 동아일보와의 인연이 떠올라 동아꿈나무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기사가 나간 지 12년 만의 일이다. 나 자신이 어렸을 적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어려움을 잘 안다. 가정 형편 때문에 공부를 그만두는 후손들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2년 후에는 5000만 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독립유공자 후손 박원재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