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어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평창 올림픽 고위급대표단 명단에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을 포함시켜 우리 측에 통보해왔다. 대규모 응원단과 예술단 파견에 이어 대외적 국가수반은 물론 최고지도자 가족까지 보내 대대적인 평창 유화 공세를 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어제 일본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만나 북한에 대한 압박을 최대한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두 사람은 “북한의 미소 외교에 눈을 뺏겨선 안 된다”는 데 동의했다고 아베 총리는 밝혔다.
김정은이 자신의 혈육이자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인 김여정을 파견하기로 한 의도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평창의 관심을 북한에 집중시켜 북한 체제 홍보의 선전 무대로 삼겠다는 것이다. 폐회식의 스포트라이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에게 쏟아진다면, 개회식에선 김여정이 그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북한은 오늘 열병식을 강행해 ‘핵무력’을 과시하고는 내일 김여정을 앞세워 유화 공세를 편다. 실로 교묘한 교란전술이다.
김여정은 대표단의 활동을 좌우할 실세다. 김여정을 통해 한국 정부를 제3차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밀착관계로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태도를 떠보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김여정은 미국의 독자 제재 대상자이고, 함께 오는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은 유엔 제재 대상자다. 이들의 파견으로 대북 제재 공조 전선을 흩뜨리겠다는 노림수도 다분하다.
이런 대결 분위기에서 타협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이 남북 해빙 기류를 북-미 대화로 이어갈 절호의 기회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동안 북측 인사와 만날 일 없다던 펜스 부통령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며 유보적 태도를 보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북한도, 미국도 올림픽이 만들어준 절묘한 ‘평창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외교도 위기냐 기회냐, 그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