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사람 꼭 비이성적 아냐… 김정은 ‘고위험·고수익’ 투자 귀재 美 선제공격 北 반격 확률 낮아… 협상 통한 생존 모색 공산 커 제한적 공격 무조건 반대보다 전면 경제봉쇄 美 설득해야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언뜻 보면 김정은이 비이성적이고 무슨 일을 저지를지 예측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악독하고 잔혹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비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이성적 행위자(rational actor)란 자신의 최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 그런 정의(definition)의 잣대로 본다면 김정은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전략적이다.
지난 6년간 김정은의 행적을 살펴보면 철저한 득실계산 끝에 체제의 생존과 자신의 권력 유지에 이익이 되는 선택만을 해온 놀라운 일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본토까지 도달할 핵미사일 개발도 이를 통해 얻을 전략적 이익이 이에 수반될 정치경제적 비용을 압도한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김정은이 무턱대고 도발을 즐기는 것은 아니고 위험을 피할 줄도 알고 의도하지 않은 군사 충돌에 말려드는 것도 경계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군권을 장악한 직후인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를 포격했다가 우리 군이 휴전 이후 처음으로 황해도 본토를 타격하자 즉각 포격을 중지한 바 있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을 향해 우리가 감히 반격을 못 할 것이라는 판단이 빗나가자 확전을 피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2012년 12월 22일 성탄절을 계기로 기독교 단체가 서부전선 애기봉 등탑에 점등 행사를 강행했을 때나 민간단체들이 대북 전단 살포 행사를 벌일 때마다 김정은은 온갖 살벌한 위협을 남발하면서 실제 포격 준비 태세까지 갖추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는 것은 자제하거나 비무장지대(DMZ) 내에 목함지뢰를 몰래 매설하는 수준의 보복에 그쳤다.
북한이 이렇듯 이성적이라면 전쟁을 억지 못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억지력은 도발을 통해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압도적으로 많은 데서 나온다. 한미 동맹이 건재한 상황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전쟁을 도발하면 김정은은 모든 것을 잃게 되므로 평상시에는 억지가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이 다른 핵무장 국가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억지가 실패할 순간이 온다는 데 있다. 김정은이 내부의 급변사태로 어차피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몰리면 핵무기 사용의 손익구조가 바뀌기 때문이다. 핵 사용으로 더 잃을 것이 없고 오히려 외부의 군사 개입을 저지함으로써 정권을 연장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실존적 결심을 좌우하게 되고 이런 상황에 도달하면 억지력은 더 이상 작동할 여지가 없어진다.
김정은이 미국의 제한적 선제공격을 받으면 어떻게 나올까? 김정은의 생존본능과 이성이 마비되지 않는다면 전면적 반격에 나설 가능성은 평생 누릴 권력을 포기하고 체제의 종말을 선택할 확률만큼 낮다. 함부로 오기를 부렸다가 미국이 쳐놓은 덫에 걸려들어 완전 궤멸을 당할지 모르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수백 기 배치할 때까지 와신상담하며 후일을 기약하자고 일단 측근들을 안심시켜 놓은 다음 비핵화 협상을 통해 생존을 모색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김정은이 이성을 잃고 자멸을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