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청년 작가들]<1>30대에 대산문학상, 시인 서효인
서효인 시인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해 왔다. 많은 책을 만들어내며 독자의 반응을 현장에서 체감해온 그는 “변화가 요구될 때 사회는 그 동력을 문학으로부터 얻어내기를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난해 대산문학상은 문단의 화제였다. 역대 수상자가 대개 60대 전후여서 물리적 이력이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던 이 문학상의 수상 시인과 소설가가 30대였다. 지난 세기의 사회적 관행이 무너지고 있음을 문학상의 변화에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그 시인이 서효인 씨(37)다. 세 번째 시집 ‘여수’가 수상작이 됐다. 앞서 김명인 시인이 1992년 낸 시집에 여수를 제목으로 한 시를 실었고, 소설가 한강 씨의 1995년 소설집 ‘여수의 사랑’도 여수가 배경이다. 그러나 선배 작가들이 묘사한 여수는 기억과 상처의 공간이지만 서 씨에게 여수는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길이 나타나고 … 사랑이 시작된’ 곳이다.
6일 만난 서 씨는 문학의 길에 들어선 계기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런 그도 고등학생 때 맞은 외환위기의 충격이 엄청났기에 한때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다.
“도서관에 앉아 있는데 공부가 안됐어요. (적성에) 안 맞아서…. 수험서 대신 서가의 시집들을 읽기 시작했죠. 시집 독서력이 그때에야 쌓였어요.(웃음)”
등단작 투고는 ‘원고를 출력해 우편으로 보내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문예지에서 인터넷 게시판에 원고를 올리라는 공고를 냈고 그대로 따랐다. 자료화를 위해 블로그에 모아둔 것을 출판사 대표가 우연히 보고 출간을 제안했다. 첫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2010년)이 그렇게 나왔다. 그때 ‘소년들이여, 등에 누운 참고서 아래에 붉고 뜨거운 바람의 계곡을 기억해요. 그리고 궐기해요’라고 격렬하게 노래했던 그는 시적 깊이를 더했다고 평가받는 ‘여수’를 두고 “아저씨가 됐다”면서 웃었다.
자신의 세대가 선배 문인과 다른 지점이 어디에 있을지 묻자, 그는 “청춘의 감수성으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사회가 나아질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인 첫 세대가 아닐까 싶다”며 “선배들에게 배우고 벼려서 나아가기보다는 우리 것이 따로 있다고 자각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텀블벅에선 소설을 출간하기 위해, 가방이나 지갑을 제작하기 위해 기획안을 올리고 펀딩을 요청합니다. 가방과 문학이 다르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죠.”
과거의 문학은 대의를 갖고 사회에 응전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여겨졌지만, 그는 자신도, 사회도 “이제는 문학을 한다고 더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사회적 계기를 만났을 때 문학이 발휘할 힘은 셀 것임을 믿는다고 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숱한 말들이 쏟아지지만 타임라인에서 흘러가버리면 되찾기도 어려워요. 사회를 일시적으로 흔드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을 주는 것은 문학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문학이 시간을 두고 쌓아온 무게와 질감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