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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속살]文대통령 개헌 속도전 배경엔…‘기명투표’ 노림수가?

입력 | 2018-02-08 18:34:00


문재인 대통령이 연일 개헌 속도전을 펼치는 배경에 숨은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헌법과 국회법 제112조 제4항에 따르면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경우 20일의 공고기간을 거친 후 국회가 60일 안에 기명투표 표결로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 국회가 제출한 개헌안은 여야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을 수 있는데, 정부가 제출한 개헌안은 본회의에서 표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면 국회가 본회의 상정을 거부하며, 무기한 시간을 끌지 못한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이 국회의 여야 개헌안 협상 과정을 지켜보기 보다는 적극 자체 개헌안 마련에 돌입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자체 개헌안을 발의하는 순간, 개헌 국면은 현재와는 180도 다른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안에 대한 국회 표결이 국회법상 ‘기명 투표’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대통령 개헌안에 반대 표결을 한 것이 기록으로 남게 되면 향후 여권으로부터 ‘호헌세력’이라는 비판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표결은 ‘무기명 투표’로 진행돼 누가 반대 표를 던졌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반대나 무효표를 던진 의원들을 색출하기 위해 “탄핵 찬성 인증샷을 남기자”고 압박하기도 했다.

여권 관계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야당 의원들이 ‘기명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지려면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개헌 시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하려면 3월 안에 국회가 개헌안에 합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7일 정책기획위원회를 통해 국민개헌자문특별위원회(가칭)을 구성하고, 권력구조 개편안까지 담은 개헌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권력구조 개편이 여야 합의가 어려우면 기본권 지방분권 개헌부터 먼저 하자”고 제안했던 것보다 더 적극적인 입장을 내고 있는 것이다.

여권도 문 대통령의 개헌 속도전에 발을 맞추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헌법 조항 중 신설 및 수정이 필요한 90개 조항을 세세하게 밝혔다. 특히 ‘촛불집회’ 문구, 경제민주화 관련 내용, 토지공개념 등 이념적 논란이 불가피한 조항들을 대거 포함시켰다. 민주당 관계자는 “폭탄을 한 개가 아닌 수십 발을 동시에 터뜨려 야당이 6월 개헌을 꺼리는 야당이 반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전략이다. 일종의 블랙홀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권의 개헌 속도전은 6·13지방선거까지 고려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개헌이 좌절될 경우 ‘야당=호헌세력’이라는 프레임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고위관계자는 “영화 1987 흥행으로 ‘호헌세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다. 개헌 대 호헌 구도가 실제 선거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