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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 할아버지 그립다” 눈물 쏟은 스키 여제

입력 | 2018-02-10 03:00:00

[평창올림픽]美 린지 본의 ‘특별한 평창’




린지 본(왼쪽)과 지난해 11월 사망한 할아버지 도널드 킬다우가 생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스키 여제 린지 본(34)은 미국 대표 선수 242명 중 마지막으로 8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을 불과 하루 남기고서였다. 4일까지 독일에서 월드컵을 치르긴 했지만 엄청난 ‘지각’이었다. 9일 평창 메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본의 기자회견에서 나온 첫 질문도 ‘왜 이렇게 늦었나’였다.

본은 “비행기편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뤘다. 내가 탄 게 개회 전에 도착할 수 있는 마지막 비행기”라고 말했다. 그는 “컨디션 유지가 최우선이었다. 정말 오래 기다린 올림픽이다. 어떤 문제로든 아프고 싶지 않았다. 교통체증도 피하고 싶었다. 사실 밴쿠버 올림픽 때는 공항에서 마스크까지 끼고 있었다. 오늘은 기자회견을 해야 하니 마스크는 안 썼다”며 웃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걱정하고 대비할 만큼 본에게 평창 올림픽은 의미가 남다르다. 4일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월드컵 여자 활강에서 가장 빨리 피니시라인을 통과한 뒤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고 했다. ‘해냈다. 드디어 건강한 몸으로 올림픽에 간다!’ 통산 월드컵 81승이라는 대기록보다도 부상 없이 평창에 갈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기쁨이었다.

본이 올림픽 개회식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2002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본은 “그동안은 출전 종목이 대회 초반에 있어서 개회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솔직히 추운 날씨에 오랫동안 서 있는 건 경기력에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여자 경기가 조금 뒤에 열리기도 하고 마지막 올림픽이니 참가하고 싶었다. 올림픽의 모든 순간들을 다 빨아들이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이라는 특별함 외에도 평창은 본에게 꼭 승리해야 할 ‘이유’가 있는 곳이다. 본의 할아버지 도널드 킬다우는 6·25전쟁 당시 이번 평창 올림픽 알파인스키 경기가 열리는 강원 정선 인근에 공병대로 파견돼 2년 넘게 복무했다. 살아있었다면 올해 89세였을 그의 할아버지는 이번 대회를 100일 앞둔 지난해 11월 1일 세상을 떴다. 고령의 할아버지는 불편한 몸에도 자신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한국에서 손녀가 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본은 본보 올림픽 시리즈 ‘별들에게 꿈을 묻다’의 첫 회 인터뷰에서 이런 사연을 밝힌 바 있다.

린지 본(왼쪽)과 지난해 11월 사망한 할아버지 도널드 킬다우가 생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할아버지가 오실 수도 있었는데…’라는 질문이 나오자마자 본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라며 곧바로 굵은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를 위해서 정말 잘하고 싶다. 너무 그립다. 할아버지는 내 인생에서 너무 큰 부분이었다. 살아서 보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할아버지가 다 보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안다. 날 도와주실 거라 믿는다.”

집 한쪽 벽을 손녀 관련 기사를 모아둔 스크랩북으로 가득 채웠던 할아버지는 올림픽 전 본과 함께 촬영한 다큐멘터리에서 평창 올림픽이 기다려지느냐는 질문에 “손녀의 스키를 보면 심장이 요동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를 평창에 모셔서 자신의 레이스를 보여 드리려고 애썼기에 할아버지의 부재(不在)는 본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다. 본이 할아버지와의 추억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쏟자 이날 기자회견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부담감이 그녀를 억누르지는 않을까. 본은 “멋있게 끝내고 싶어서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토리노 때는 스스로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줬다. 지금은 정말 기분이 좋다. 내가 아닌 할아버지를 위한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이번 시즌 동안 늘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셨다. 특히 멘털은 스타팅게이트에서 영향을 끼친다. 스스로를,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난 이전에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평창=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