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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평창 온 괴짜 할배 “이 아름다운 나라에 핵폭탄을?”

입력 | 2018-02-10 03:00:00

◇한국에 온 괴짜 노인 그럼프/투오마스 퀴뢰 지음/따루 살미넨 옮김/212쪽·1만2800원/세종서적




인천공항에 도착해 평창 겨울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 반다비 앞에서 만세를 부르는 그럼프. 피겨스케이트장에 간 그는 관중석을 따뜻하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겨울올림픽은 겨울 같은 환경에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종서적 제공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는 핀란드 농부이자 나무 스키를 만드는 노인 그럼프가 생애 처음 비행기를 탔다. 목적지는 한국. 서울의 한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간 손녀 걱정에 밤잠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뚱뚱한 김 씨 소년과 오렌지색 얼굴에 대걸레 머리를 한 양키 대통령이 핵폭탄을 둘러싸고 말다툼을 하는 곳이다!

핀란드의 유명 작가인 저자는 그럼프의 한국 여행기를 통해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선과 분단의 아픔, 평화에 대한 염원을 유머러스하면서도 가볍지 않게 녹여냈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지난해 서울과 평창 겨울올림픽 시설 곳곳을 직접 찾아다녔다. 대표작 ‘괴짜 노인 그럼프’ 시리즈는 인구 500만 명의 핀란드에서 50만 권 이상 판매됐다.

그럼프는 스키 장인인 자신의 집을 대통령이 찾아와도 바쁜 날이라며 시큰둥하게 대할 정도로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에 오른 그럼프는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소속의 남녀를 만나 올림픽 시설을 둘러보고 집에 초대받는다.

한국은 특이하다. 휴게소는 핀란드의 모든 휴게소를 합친 것보다 크고, 음악이 흐르는 버튼을 설치한 공중화장실은 안마시술소 같다. 음식은 그리 낯설지 않다. 소주는 물을 탄 보드카 맛이고, 막걸리는 핀란드의 발효주 ‘낄유’ 맛과 비슷하다. 피겨스케이트장에서 김연아 선수의 나비 날갯짓 같은 아름다운 몸짓을 보며 아내, 아들들과 TV로 겨울올림픽 경기를 함께 봤던 지난날을 추억한다.

한국에 오기 전 그럼프는 공중에 폭탄이 날아다니거나 길거리에 공격용 소총을 든 남자들은 없는지 염려했다. 이에 대한 손녀의 대답은 ‘쿨’하다. 한국 사람들은 북한의 위협을 속임수로 여기는 것 같고, 김 씨 가족은 늘 화가 난 외삼촌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단다. 뉴스로만 한국을 접한 외국인과 실제 한국에 살아본 외국인의 인식 차이를 선명하게 대비시키는 대목이다.

핀란드도 내전에 이어 소련과의 전쟁(1939∼1944)과 가난을 겪었고 단기간에 농업 국가에서 첨단 기술을 가진 국가로 성장했다. 그럼프는 한국을 찬찬히 접할수록 핀란드와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가슴으로 한국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럼프는 한국 여행을 마친 후 뚱뚱한 김 씨 소년에게 편지를 쓴다. 허풍은 당장 그만두고 나비, 비둘기, 산을 충분히 오랫동안 쳐다보라고. 이 모든 것을 수소폭탄 곤죽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평창올림픽이 예상치 않게 국제 정치의 각축장이 된 지금, 한반도의 평화와 성공적인 올림픽을 기원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겨울 스포츠를 사랑하는 그럼프의 회상을 통해 역대 겨울 올림픽과 유명 선수들의 활약, 각종 에피소드를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