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文대통령 방북 초청]

김여정, 김정은 친서 전하며 “내가 특사”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10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부터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받고 있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에게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는 김정은의 평양 초청 의사를 구두로 전달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다만 문 대통령이 “여건을 만들어”라는 전제를 단 것은 북한의 페이스대로 급하게 끌려가지만은 않겠다는 뜻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한 한국과 미국, 북한 3자 간의 어느 때보다 복잡한 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 거듭 “평양 오시라” 권유한 김여정
“준비된 발언만 하는 편이었다”는 우리 측 관계자들의 김여정에 대한 공통된 평가를 고려하면 거듭된 초청 역시 의도된 메시지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문 대통령에게 “다시 만날 희망을 안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김씨 일가를 한국에 내려보낸 김정은이 3차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강하게 희망하고 있다는 뜻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청와대와 여권에서조차 “물밑 조율 없이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도, 수차례 정상회담 의지를 밝힌 것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전례 없이 강력한 제재에 직면한 김정은이 3차 정상회담을 통한 국면 전환을 위해 사실상 ‘다걸기’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남 설명자료’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북한의 의지가 매우 강하며 필요한 경우 전례 없는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 文, 확답 없이 “미국과의 대화 적극 나서 달라”
방북 초청에 대해 10일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김 대변인은 “미국과의 대화에 북쪽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당부했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는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 대화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을 북한에 전달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미 접촉 수준의 움직임이라도 있어야 그 다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신중한 태도는 2000,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도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어느 정도 성과가 담보돼야 할 수 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3차 남북 정상회담 첫 고비는 4월 한미 연합훈련
북-미 대화와 함께 문 대통령의 평양행 여부를 결정할 또 다른 열쇠는 올림픽 직후인 4월부터 열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의 완전한 중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미 양국은 연합훈련을 4월 1일 시작하기로 잠정 합의한 상태다. 여기에는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북 지휘부 제거 작전이 포함된 키리졸브 훈련 일정도 있다.
정영태 북한연구소장은 “우리 측에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한미 연합훈련 중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참가 병력이나 전력을 줄이는 식으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북 압박 기조를 이어가는 미국은 훈련 강행을 요구할 게 확실시되고 있어 한미 동맹의 균열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손효주·홍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