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몸을 바쳐 아버지를 살리다

입력 | 2018-02-13 03:00:00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홍인보(洪寅輔)가 이웃 사람을 때려 그가 앓다 죽으니 살인죄로 옥에 갇혔다. 이때 아들 홍차기(洪次奇)는 배 속에 있었다. 태어난 몇 해 뒤, 아이가 자다가 갑자기 놀라며 “아버지” 하고 외쳤다. 한 달에 세 번씩 이런 일이 있어 알아보니 그날은 추관(推官)이 아버지를 형신(刑訊)하는 날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를 신기하게 여겼다. 6세 때 같이 놀던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것을 보고 돌아와 어머니에게 물었다. “남들은 모두 아버지가 있는데 왜 저만 없나요?” 어머니가 울며 사실을 말해 주자 아이가 슬픈 얼굴로 “옥문이 저승도 아닌데 제가 6세가 되도록 얼굴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하고는 옥으로 찾아가 흐느끼며 아버지를 뵈었다.



강세진(姜世晉·1717∼1786) 선생의 ‘경현재집(警弦齋集)’에 실린 ‘효자 홍차기전(洪孝子次奇傳)’입니다.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자라던 아이가 아버지가 형벌을 받을 때마다 놀라 잠에서 깨었다니 가슴이 아프면서도 한편 놀랍습니다. 부모와 자식은 이렇게 끈끈히 연결되어 있나 봅니다.



11세가 되자 서울로 가 북을 두드렸으나 관리가 막았다. 홍차기는 대궐 앞에 엎드려 대신들이 드나들 때마다 수레를 막고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모두들 불쌍히 여겼으나 사형수라 감히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 1년이 지났다. 어느 날 마침내 한 재상이 이를 임금에게 아뢰었다. 임금이 기이하게 여기고는 “사형수이지만 십여 년을 갇혀 있었으니 죗값은 치렀다. 다시 검토하라” 하였다. 홍차기는 200리 길을 달려가 관가에 사정을 아뢰었다. 도에서도 살려 주는 쪽으로 의견을 올렸다. 홍차기는 다시 서울로 올라오다가 병에 걸려 쓰러졌다. 객사에 누워서도 계속 헛소리로 아버지의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마침내 석방하라는 특명을 내리자 소식을 들은 홍차기는 일어나 춤을 추더니 대궐을 향해 세 번 절하고는 쓰러져 죽었다.



“하늘이 이렇게 지극한 효자를 내고 또 그렇게 빨리 데려가시니, 화복의 이치는 알 수 없구나(天旣生如此至行人, 而又奪之速, 禍福之理, 未可知也)”라며 이야기는 끝납니다. 제 한 몸 바쳐 아버지의 죽음을 막아낸 어린 아들의 모습이 눈물겹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더 나아가 가족 간의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일화입니다. 설 명절이 다가옵니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