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삼지연관현악단 특별공연, 음악 담당 기자가 봤더니
트로트-재즈 등 韓·美 문화 엿보여… 우리 가요 부르며 R&B식 애드리브
한국 걸그룹 빼닮은 여성중창단, 노래에 비해 안무는 아마추어 수준
한국 무대에서 이선희 원곡의 ‘J에게’에 R&B 스타일의 애드리브를 섞어 열창한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단원들. 사진공동취재단
그날의 특별공연을 정치와 이념을 떠나 오직 음악과 무대에만 맞춰 복기해봤다. 콘서트, 그 자체로 본다면 몇 점짜리 공연이었을까.
○ 한국식 가요무대, 미국식 재즈와 R&B 애드리브 가창
이는 공연 초반의 다섯 번째 곡, ‘여성2중창―J에게’(원곡 이선희)에서부터 드러났다. ‘…아직도 변함없는데’의 ‘데∼’는 물론 첫 음 ‘J∼’까지, 한 음절에서 2∼4회 음정 변화를 일으키며 꺾어 부르는 전형적인 R&B 창법 애드리브가 계속됐다. 절정부에서 두 보컬이 서로 치고 빠지는 모양새도 서구 팝 디바의 공연을 닮았다.
농익은 미국식 재즈와 블루스도 펼쳐졌다. ‘다함께 차차차’(설운도)를 스윙재즈 풍으로 바꾼 게 돋보였다. 악단은 영락없는 미국 재즈 빅밴드처럼 굴었다. 콘트라베이스군은 피치카토(뜯기) 주법으로 재즈의 워킹 베이스(걸음 걷듯 음을 오가는 주법)를 재현했고, 보컬은 ‘따랍따랍따∼’ 하는 스캣을 추임새처럼 넣었다. ‘어제 내린 비’(윤형주)에서 테너 색소폰과 알토 색소폰의 솔로 배틀은 서구 재즈 악단을 방불케 했다. 당김음과 긴장음을 품은 속주로 기교를 한껏 뽐낸 이 대결은 재즈의 리듬과 형식을 깊이 체득해야 나올 수 있는 수준이었다.
○ 아마추어 한국 아이돌의 무대
관현악 주자들 뒤에 배치돼 전기기타를 연주하는 삼지연관현악단원.
국악 비중이 떨어진 점이 아쉬웠다. 악단원 수십 명 가운데 국악기 전담 연주자는 아예 없었다. ‘아리랑’을 할 때 서양식 타악기와 관악기 주자가 잠시 꽹과리와 장새납(북한식 태평소)을 들어 연주하고 내려놨을 뿐이다. 좌중을 압도하려는 의도인지 스피커 음량은 시종일관 크기만 해 섬세함이 떨어졌다.
한편 소녀시대 서현의 출연은 공연 직전 결정됐다. 관계자는 “출연을 수차례 권했지만 ‘초 단위까지 촘촘히 짜인 공연 특성상 새 사람을 투입하기 어렵다’며 북측이 고사했다. 공연 직전 극적으로 성사됐다”고 귀띔했다.
북한 최고 연주자들로 구성된 이들의 역량과 합은 의심할 바 없었다. 템포, 박자, 조성의 변화가 잦은 연곡(메들리)이 보여줬다. 이를테면 연주 중 ‘뛰르끼예(터키) 행진곡’의 감정을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로 정점에 올린 뒤, 급히 이완시키며 애틋한 곡조의 ‘아득히 먼 길’(러시아 연가 번안 곡 Those Were the Days)로 이어붙이는 부분은 팝스 오케스트라 최고 수준의 테크닉을 보여줬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