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스위스서 3년여 유학… 초등학교 다녔을 뿐이지만 영향 어딘가 남아있을 듯 訪南中 도도한 모습 뒤에 북한 상류층 우월감 사라져… 미묘한 소프트파워의 힘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김여정은 1997년 무렵 김정은과 함께 헤스구트 공립초등학교에 등록했다. 김정은은 이듬해 중학생이 돼 같은 부지에 있는 슈타인횔츨리 공립중학교에서 7학년부터 9학년 초까지 다녔다. 김여정은 계속 초등학교에 다녔다. 둘은 학교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연립주택단지 내 3층 벽돌집에 살았다. 북한 대사관에서 나온 여성이 둘을 돌본 것으로 알려졌다. 둘은 2000년 말 학교를 떠났다.
김정은이 베른 국제학교를 다녔다는 잘못된 기사들이 지금도 나온다. 베른 국제학교를 다닌 건 세 살 위의 김정철이다. 김정철은 베른 북한 대사관 숙소에 거주하면서 보디가드 학생까지 대동하고 메르세데스벤츠를 타고 학비가 비싼 그 사립학교에 다녔다. 김정철은 1998년 9학년 무렵 학교를 떠났다. 언제부터 다녔는지는 불명확하지만 늦어도 1994년부터는 다녔다. 당시만 해도 누가 김정일의 후계자로 키워지고 있었는지는 분명하다.
당시 스위스 거주 한국인들은 김정은과 김여정이 쾨니츠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뉴스에 놀랐다. 북한 대사관에서도 상당히 떨어져 있는 데다 부자들만 모여 사는 은밀한 동네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흥미로운 반응 중 하나는 “김정일이 돈이 없지 않았을 텐데 왜 두 자녀를 학비 무료인 공립학교에 보냈을까”였다. 김정철이 후계자가 된다면 김정은과 김여정이 그보다 잘나서는 안 되는 게 세습 왕조의 룰이지만 그 때문에 스위스의 보통 사람들이 받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김정일은 자녀들이 세상 물정을 알 만한 고등학생 때는 외국에 두지 않았다. 김정일은 두 아들 모두 중학교 3학년 무렵인 9학년 때 불러들였다. 겨우 중학생 시절을 보낸 두 아들에게도 유학 생활의 영향은 팝송 농구 스키에 대한 열정으로 남아 있다. 김정철은 지금도 에릭 클랩턴 공연을 보러 다니고, 김정은은 집권 후 미국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먼을 불러들이고 마식령스키장을 지었다. 초등학생이었던 김여정에게는 그 영향이 어릴 적 배운 외국어에 대한 감각처럼 잠재해 있다 더 폭넓게 드러날 수 있다.
김정철이 여성호르몬 과다 분비로 후계 구도에서 탈락하면서 김정은이 졸지에 김정일의 후계자가 됐다. 김정은이 집권한 후 북한 매체에 등장한 김여정의 초기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우스꽝스러웠다. 김정은이 열병식을 하는 무대의 뒤쪽에서 느닷없이 얼굴을 내민다거나 김정은의 시찰행사에 혼자 떨어져 따라가거나 히죽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철이 없어 그랬을 수도 있고 자유분방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김여정은 대외적으로는 이번 방남이 데뷔나 다름없다. 그는 흑백의 단정한 옷차림에 옅은 화장을 하고 턱을 약간 치켜든 도도한 자세로 가능한 한 말을 아꼈다. 그나마 오래 훈련을 해서 ‘도도녀’의 모습을 연출한 듯한데 과거 북한에서 잘나가던 여성들이 보여주던 내적인 도도함을 찾기 어려웠다. 김여정만 아니라 현송월도 그랬다. 자신을 지켜볼 수많은 한국 여성들이 북한 상류층 여성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앞서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 아닐까. 상대방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능력을 통해 작용하는 소프트파워의 힘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