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전 대통령은 2007년 찰스턴 공군기지 연설에서 알카에다 조직원을 ‘친구들(folks)’ 이라고 불렀다. 뉴욕타임스 사이트 캡처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전 워싱턴 특파원
말 잘하기로 소문난 미국 정치인에게도 약점은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 중에는 알게 모르게 국민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말을 하는 정치인은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는 언어들이 많이 포함돼 있는 거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는 정치인의 언어.’ 제가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리얼 폴리틱스’라는 미국 유명 정치매체가 정치 담당 기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입니다.
△“Look!”(이것 봐)=미국인들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주변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싶을 때 ‘Look!’이라고 운을 뗍니다. ‘내 말 좀 들어봐’라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런데 ‘Look’이라는 표현은 품격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국 TV 정치 토크쇼에서 패널들이 정신없이 말싸움할 때 서로 ‘룩(look)’ ‘룩’ 하면서 자기 말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이 단어를 쓰면 얼마나 유치해 보이겠습니까. 그런데 ‘연설의 달인’이라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1시간 기자회견 동안 ‘Look!’을 26번이나 연발한 적이 있습니다. 약 2분당 1번꼴이었습니다.
△“Folks”(친구들, 동지들)=정치인이 국민들과의 동질성을 강조하고 싶을 때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전략이죠.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오바마 전 대통령 할 것 없이 모두 연설이나 대화할 때 수없이 ‘folks’를 외쳤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단어는 적에게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나 대통령들은 너무 즐겨 사용하다 보니 때를 가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9·11테러를 일으킨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가리켜 “그 친구들(folks)”이라고 해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원수가 어느새 친구가 됐던가.’
이 사례들을 보면서 짜증 유발 강도가 높지 않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미국 정치인들은 대부분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습니다. 국민 짜증과 불쾌감 유발 경쟁에서 미국 정치인들이 감히 한국 정치인들의 상대나 되겠습니까.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전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