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적으로 ‘나’를 지키게 하기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B라는 엄마는 “잘했어. 맞고만 있으면 바보야”라고 한다. 아이는 엄마의 말에 폭력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이럴 때 뭐라고 해줘야 할까? 우선 “누가 감히 엄마의 이 소중한 아들을 때렸니?”라고 말해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나도 때렸거든”이라고 하면, “아이고, 오늘 너희 둘 다 엄청 힘들었겠네”라는 정도로 대답한다. 아이 상처에 약을 좀 발라주면서 어떤 상황이었는지, 동호는 얼마나 다쳤는지 묻는다. 그리고 동호 엄마한테 전화해서 “애들이 이만저만해서 이렇게 된 것 같은데, 동호 혹시 많이 안 다쳤어요?”라고 물어야 한다. 동호 엄마와 서로 연락하지 않는 사이라면, 교사에게 전화를 해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다가 이렇게 저렇게 됐는데, 선생님이 그 아이가 괜찮은지 한번 봐 주세요”라고 부탁해야 한다.
상대 아이가 먼저 때리거나 괴롭혀서 우리 아이가 대응하다가 밀치거나 때리게 된 것이라면 우리 아이를 너무 혼내서는 안 된다. 물론 “잘했다”라고 칭찬해서도 안 된다. 그릇된 가치관이 생기게 하지 않으려면 ‘부당하게 당하지는 마라’라고 가르치는 선에서 끝내야 한다. 아이가 “걔가 먼저 때렸어”라고 하면, “그런 행동은 안 되는 거야. 그 아이는 그걸 배우고 고쳐야 해. 엄마가 네 엄마라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때리는 것은 안 되는 거야. 그럴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라고 해준다. “나도 걔 때렸는데?”라고 하면, “너도 너를 지키려고 한 행동인데, 엄마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얘기할 수는 없어. 그런데 다른 방법들도 있어. 첫째는 말로 하는 것이 좋아. 기분 나쁜 얼굴로 ‘뭐야?’ 할 수도 있어. 그것도 ‘어디서 감히 나한테 이래?’ 하는 표현이거든.” 이렇게 가르쳐준다. 그러면 아이는 ‘우리 엄마는 나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그러네. 감히 누가 날 건드려’ ‘주먹을 날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도 있구나’ 등을 배운다.
친절해야 한다, 배려해야 한다, 때려서는 안 된다, 물건을 뺏으면 안 된다, 질서를 잘 지켜야 한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거친 말을 하면 안 된다, 욕을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덕목들이다. 착하고 모범적으로 키우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아직 어린 아이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기본적인 대응마저도 나쁜 행동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어떤 위기의 순간, 자신을 적절하게 지켜내지 못할 수도 있다.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보다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누군가 부당하게 나를 때리거나 심한 말을 하면, 그것을 절대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상황에 맞는 강도로 어떠한 형태든 기분 나쁘다는 것을 표현하라고 해야 한다. “너 도대체 왜 그래?”라고 하거나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하니?”라고 맞받아쳐서 ‘네가 나에게 그럴 권리는 없어’를 분명하게 보여주도록 해야 한다.
누가 나를 부당하게 대할 때는, 내가 나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꼭 주먹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왜 그렇게 하느냐” “기분 나쁘다”라는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다고 상대방이 금방 깨달음을 얻거나 사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번에 또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래도 해야 한다. 그것은 상대방을 계몽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나를 기본적으로 보호하고 지키기 위함이다. 그래야지만 인간은 힘이나 체격과는 무관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가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