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멍 쉬멍 꼬닥꼬닥’(놀면서 쉬면서 천천히) 걷는 제주가 손짓한다. 속도에 지친 도시인들은 바다의 속삭임 속에 일상의 지친 마음을 달랜다. 오름과 바다, 원시자연, 이름도 생경한 소박한 마을들, 물질하는 해녀들은 섬나라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준다. 제주에선 나 홀로 터벅터벅 걷는 혼행족(혼자 여행하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혼행족 열풍은 호텔과 펜션이 전부였던 제주에 수많은 게스트하우스를 탄생시켰고, 새로운 여행문화를 창출했다.
▷1인 가구 500만 시대. ‘욜로 라이프’(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자) 인식이 퍼지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등산 스킨스쿠버 등 다양한 레포츠, 힐링 체험이 가능한 제주는 혼행족의 성지로 떠올랐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밤마다 열리는 맥주 파티는 제주를 찾은 젊은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추억을 선사한다. 제주특별자치도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도를 찾은 국내 여행객 1130만여 명 가운데 76.6%는 혼자 또는 소수로 제주를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에 홀로 여행을 갔던 20대 여성이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 사건은 2012년 7월 제주 올레1코스에서 40대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면서 전국적인 관심 사건이 됐다. 살해 용의자로 지목됐다가 충남 천안의 모텔에서 자살한 한정민 씨(32)는 지난해 다른 여성 투숙객을 성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중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제주의 게스트하우스 등 민박업소는 3497개에 달한다. 2013년 1449개보다 2.4배나 늘었다. ‘제주살이’ 꿈을 안고 바다를 건넌 이주민 증가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는 현행 법령에서 별도의 업종으로 지정되지 않아 정확한 현황 파악이나 관리가 어렵다. 유형에 따라 농어촌민박, 휴양펜션, 관광숙박업 등 제각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관리인이나 직원들에 대한 정보를 주무 관청도 알 수 없다고 한다. 혼행족을 노린 끔찍한 범행은 제주의 이미지에도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제주 여행의 꿈을 깨뜨리지 않을 대비책이 필요하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