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병원 경영진이 신생아 중환자실 미숙아 4명 사망 사건과 관련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동아일보DB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당연히 외래환자가 눈에 띄게 줄었으리라 예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이날 로비엔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들로 가득했다. 병원 측은 신생아 사망 사건 이전보다 환자가 15%가량 줄었지만 더 떨어지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대목동병원은 신생아 사망 사건과 관련해 8일 유족들을 만나 사건 54일 만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다. 신생아 사망 사건이 난 지 5일 뒤인 12월 20일 병원 측은 유족들과 첫 간담회를 열었지만 갈등만 빚은 채 30분 만에 깨졌다. 유족들이 마음을 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필자가 한때 병원에서 일할 때 선배들에게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병원에서 생긴 미묘한 문제와 관련해 환자나 가족에게 쉽게 사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칫 환자나 가족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한 것이 빌미가 돼 의료소송을 당할 경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의료진의 진심어린 사과를 듣고 싶은 환자나 가족의 입장에서는 의료진이 책임을 회피한다고 느끼는 순간 신뢰가 깨지고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 결국 감정의 깊은 골로 인해 의료소송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의료진과 환자 모두 힘든 상황에 처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대목동병원의 사과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의료계에선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낮은 수가와 의료 인력의 부족 등 의료 시스템 자체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1차적 원인은 해당 병원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병원 측이 좀 더 적극적으로 갈등을 풀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그동안 유족들이 병원에 느꼈을 분노와 아쉬움이 얼마나 컸겠는가.
결국 그 파장은 의료원장과 병원장을 포함해 모든 경영진이 사임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한 병원에서 의료원장과 병원장이 동시에 사임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현재는 지난달 29일 신설된 이화의료원 운영특별위원회(위원장 김광호)가 임시로 병원을 경영하고 있다.
이 법을 제안한 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이상일 교수는 “사과법을 시행한 이후 미국 미시간 의료원의 경우 소송 건수와 배상액, 문제 해결 소요시간 등이 절반 이상 줄었다”며 “환자나 가족에게 사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아픈 마음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소위 ‘진실 말하기’만으로도 갈등의 절반을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사과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과법과 함께 또 하나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이번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정부의 규제나 몇 명 의료진에 대한 처벌로 끝낼 게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한 뒤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모든 병원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6년 9월 전북대병원에서 발생한 중증외상 소아환자 사망 사건의 후속 조치는 좋은 본보기다. 당시 정부는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 전문가, 피해자 등이 참여하는 ‘사례검토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했다.
이대목동병원은 불행한 사고가 어느 곳에서도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유가족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의지가 보태지면 위원회 구성이 어렵지 않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