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영 자원봉사자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평창올림픽이 반환점을 돌면서 자원봉사자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번 올림픽이 여러 우려를 불식시키고 순항하는 배경에 이들의 역할이 크다는 평가다. 부실한 처우와 노로바이러스 확산, 일부 인사의 폭언 막말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설 연휴까지 희생한 자원봉사자의 활약이 한파를 녹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 더욱 풍요로운 ‘명절 올림픽’
김 씨는 대학교 4학년 때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에서 태릉볼링장 관람객 안내를 맡았다.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엄두를 내지 못하다 32년 만에 평창에서 자원봉사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그는 “한 달 넘게 집을 비워야 해 남편이 처음에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매일 전화 걸어서 ‘옷 따뜻하게 입으라’고 챙긴다”며 활짝 웃었다. 설날 오전 김 씨는 양가 부모에게 안부 전화를 드렸다. 김 씨는 “설날에도 찾아뵙지 못한 불효자식에게 ‘추운데 감기 조심하라’며 격려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차례 지낼 때 내 몫까지 고생하신 형님들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말했다.

설연휴 반납하고 자원봉사 나서는 왕종배 씨 가족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강릉시의원을 지낸 왕 씨는 현역 의원 시절인 2003년과 2007년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유치위원 중 한 명으로 참석했다. 그는 “나는 비록 금의환향하지 못했지만 삼고초려 끝에 열리는 올림픽에서 이렇게 자원봉사라도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 평창은 새로운 기회의 무대
김다빈(24), 신종호(23), 신예지(23·여) 씨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봄에 교환학생을 갈 예정인 종호 씨는 “하루 종일 선수들과 영어를 쓰다보면 마치 어학연수를 온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김 씨도 “꿈이 스포츠 마케터이다. 이곳에서 세계 최고의 스포츠 스타와 이들을 지원하는 스태프를 보면서 취업연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졸업을 앞둔 예지 씨는 “솔직히 아직 내 적성을 찾지 못했다. 평창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세 사람 곁에는 미국 시카고에서 온 이성길 씨(77)가 ‘파트너’로 함께 일하고 있다. 목사 출신인 이 씨는 3000달러(약 320만 원)를 들여 아내와 같이 자원봉사에 참가했다. 이 씨는 “나이 많은 사람이 함께 있으면 힘들 법도 한데 청년들이 배려를 잘해 준다. 자원봉사 태도와 에티켓 모두 훌륭하다”고 말했다.
주예린 씨(34·여)의 일터는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내 ‘믹스드존(공동취재구역)’이다. 선수들이 경기를 막 끝내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인터뷰하는 곳이다. 주 씨는 “결과에 상관없이 벅찬 감정에 눈물을 글썽이는 선수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카메라 불이 꺼진 뒤 내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무명 여배우’라고 소개했다. 주 씨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2년 만에 그만뒀다. 연기에 대한 꿈 때문이다.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 ‘캠퍼스의 봄’(2012) 등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맡으며 꿈을 키웠다.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7인의 신예’로 선정되기도 했다. 10년차 배우이지만 아직 대중에게는 생소하다.
작은 역할의 오디션 기회도 아쉬운 주 씨가 30일 넘게 올림픽 현장에 머무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르는 올림픽이잖아요. 솔직히 오디션 놓칠까 걱정도 있지만 설날에 결혼하라는 잔소리 안 들어서 좋아요”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