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19세 퇴학생, 고교 총기 난사 17명 사망-16명 부상
○ 맥베스 읽던 교실에 총탄 난사
약 1시간 뒤 체포된 범인은 백팩에 총을 넣고 등교하는 등의 행동으로 지난해 이 학교에서 퇴학당한 19세 니컬러스 크루즈로 밝혀졌다. 그는 학교에 들어와 화재경보기를 작동시킨 뒤 방독면을 쓰고 연막수류탄을 터뜨렸고, 나오는 학생들을 겨냥해 총을 쐈다. 범행 뒤에는 태연하게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음료수를 사먹기까지 했다. 범인은 경찰에게 “공격을 실행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머릿속으로 그런 음성을 들었다”며 “그것은 악령의 목소리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과거 총기에 집착하던 ‘왕따’였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 단체 채팅방에서 “나는 유대인, 흑인, 이민자를 증오한다”거나 “동성애자들의 머리를 뒤에서 쏘라”는 등 수많은 과격 발언을 한 사실도 밝혀졌다. 그는 “친엄마가 유대인이고 그녀를 만나지 않아 좋다”고 쓰기도 했다. 그는 어렸을 때 로저, 린다 크루즈 부부에게 입양됐지만 로저는 2004년, 린다는 지난해 사망했다. 양어머니 사망 후 크루즈는 범행에 사용한 AR-15 소총을 비롯해 적어도 5정의 총기류와 방탄복을 사들였다.
○ 트럼프 “정신건강 문제일 뿐”
FBI뿐만 아니라 학교 당국과 주 정부도 제보를 묵살했다.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 등에 따르면 총기 난사가 일어난 고교 재학생인 데이나 크레이그, 매슈 로사리오, 에니어 사바디니 등은 학교에 크루즈의 위험성을 알렸다. 이 중 사바디니는 크루즈의 옛 여자친구와 사귄다는 이유로 크루즈로부터 위협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크레이그는 “크루즈가 총기와 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사바디니와 크루즈가 다툰 뒤 학교에 알렸다”고 말했다.
플로리다주 아동가족보호국(DFS)과 지역 사법당국은 2016년 9월 크루즈가 스냅챗에 자신의 팔을 칼로 베고 총을 구입하고 싶다고 말하는 영상을 올린 사실을 확인하고 집으로 조사관을 보냈다. DFS는 크루즈와 면담까지 했으나 자신이나 남을 해칠 위험이 낮다고 결론을 내렸다.
○ 10년간 총기 사망자 31만여 명
트럼프 대통령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총기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다시금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을 포함해 벌써 올해에만 중고교에서 4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17일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연방법원 앞에는 수천 명의 시민과 학생 등이 몰려와 ‘지금 무언가를 하라’, ‘내 친구들을 죽게 하지 말라’, ‘투표로 몰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전날 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의 전미총기협회(NRA) 본부 앞에도 100여 명이 모여 총기 규제 강화를 촉구했다.
미 국무부와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통계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미국에서 총기 사건 및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31만6545명으로 집계됐다. 반면 테러에 의한 사망자는 313명에 불과했다.
이처럼 총기 규제의 당위성은 충분하지만 NRA의 로비를 이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회원이 420만 명인 NRA는 정치권에 막대한 자금을 뿌리는 것 외에도 전국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총기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NRA는 2016년 학교 사격 프로그램에 220만 달러(약 24억 원)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크루즈도 NRA가 자금을 지원한 주니어 ROTC 조직에 가입해 사격 훈련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주성하 zsh75@donga.com·위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