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 속도조절 시사
쇼트트랙 응원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7일 강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선에서 최민정이 금메달을 따자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김 여사는 직전까지 문 대통령 왼팔을 껴안고 조마조마해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강릉=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강원 평창 메인프레스센터(MPC)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제안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보다 북핵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북-미 대화가 우선되어야 하며 그전까지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속도조절론’을 분명히 한 것이다.
○ “북-미 대화 나서야 정상회담 가능” 메시지
문 대통령이 이 속담을 인용한 것은 김여정의 평양 초청 제안에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8일 “일각에서는 6월, 8월 등 정상회담의 구체적 시기까지 거론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은 신중하다. 북-미 대화 진전 없이는 어떤 후속 조치도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시에 문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는 김여정이 평양으로 돌아간 뒤 일주일 동안 미국과 다양한 채널로 소통한 결과 어떤 형태로든 북-미 접촉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17일(현지 시간) “(국무장관으로서) 나의 일은 우리가 채널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을 북한이 반드시 알도록 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나에게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기를 귀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이 아무리 워싱턴에서 대북 온건파라 하더라도 이는 ‘코피 작전’이 거론되던 최근 워싱턴 기류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도 미국에 돌아가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며 “북한과 미국이 한 번에 마주 앉기는 어렵지만 서서히 접촉과 대화로 돌아서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김정은, 열병식 이어 김정일 생일에도 ‘로키’
이 때문에 정부에선 북-미가 곧 ‘탐색적 대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미는 김정은의 도발이 이어지던 지난해 말에도 비공식 채널을 유지해 왔다”고 전했다. 정부 안팎에선 북-미 간 접촉이 시작된다면 시점은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이 끝나고 한미 연합 군사훈련(4월) 시작 전인 3월 초·중순이, 장소는 유엔본부를 중심으로 한 뉴욕 채널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김정은 역시 ‘로키(low key)’ 행보를 이어가며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고 있는 형국이다. 김정일 생일 하루 전인 15일 열린 ‘김정일 생일 76돌 중앙보고대회’에 김정은은 지난해와 달리 불참했고 최룡해 당 부위원장이 대회를 주도했다.
우리 군 역시 최근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김정은 체제 비판보다는 평창 올림픽, 김여정 방남 소식 등을 주로 소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확성기는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전략 심리전 수단이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신진우·황인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