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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호리한 몸으로 천재적 코너링… 가볍게 숑숑 탄다고 ‘차숑’

입력 | 2018-02-20 03:00:00

빙속 500m 차민규, 0.01초차 은메달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차민규의 어린 시절 모습. 어릴 때부터 유독 코피를 많이 흘렸던 차민규는 허약한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초등학교 3학년 때 쇼트트랙을 시작했다. 브라보앤뉴 제공 

차민규(25·동두천시청)는 2014년 소치 올림픽을 집에서 누워 TV로 봤다. 5개월 전 경기 도중 선배의 스케이트 날에 찍혀 오른쪽 발목 인대가 찢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전혀 아쉬움은 없었다. 그는 “다치는 바람에 선발전을 뛰지 못했다. 만약 뛰었다고 해도 국가대표로 뽑힐 실력도 아니었다”고 했다. 4년 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만난 차민규는 ‘욕심’을 말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올림픽이 이제는 자신을 위한 무대였다. 경기를 나갈 때마다 “사고 한번 쳐보자”는 말을 달고 다녔다.

그는 긴장을 모르는 천성을 타고났다. 19일 생애 첫 올림픽 무대였던 평창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스타트 라인에 섰을 때도 그저 담담했다. 역대 올림픽 타이기록인 34초42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따낸 뒤에도 엷은 미소를 띠었을 뿐이다. ‘천재’이자 ‘괴짜’ 스케이터 차민규는 그렇게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인생 스토리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 코피 자주 쏟아 운동 시작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차민규의 엄마 최옥경 씨(55)는 유독 코피를 많이 흘렸던 차민규에게 스케이트를 신겼다. 많은 아이들이 시작하는 쇼트트랙이었다. 차민규는 스케이트는 재미있었지만 호랑이 같은 코치 선생님이 시키는 훈련은 싫었다. 엄마에게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최 씨는 “너는 끈기를 길러야 한다”고 다시 스케이트장으로 돌려보냈다. 때마침 코치가 바뀌었다. 그는 박세영, 신다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재목으로 성장했다.

한국체대 입학 때도 쇼트트랙을 했다. 그런데 힘과 폭발력이 좋은 그의 발전 가능성을 본 전명규 교수(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는 스피드스케이팅으로의 전향을 권했다. 처음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선발전에 나선 그는 6명을 뽑는 대회에서 7등을 했다. 차민규는 “쇼트트랙에서는 잘해야 주니어 대표를 노릴 수준이었다. 하지만 스피드에서는 조금만 더 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4년 내내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을 병행했다. 한국 빙상판에서 몇 안 되는 사례다.



○ 가냘픈 스프린터

차민규는 보통의 500m 선수와는 체격이 다르다. 키 179cm에 75kg으로 마른 편이다. 순간적인 파워를 쓰기 때문에 우락부락한 근육을 만드는 보통 선수들과는 차이가 있다.

그의 강점은 바로 그 하늘하늘한 몸에서 나온다. 이인식 동두천시청 감독은 “19년간 선수를 지도했는데 이런 스타일의 선수는 처음 봤다. 쇼트트랙을 오래 해서인지 코너워크가 단연 최고다. 하늘거리며 스케이트를 타는 것 같은데 정말 빠르다. 재능을 타고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차민규의 별명은 ‘차숑’이다. 쇼트트랙 선수 시절부터 ‘가볍게 숑숑 탄다’는 데서 유래했다. 2016년 동두천시청에 입단한 뒤 지난해 2월 삿포로 아시아경기 500m 동메달로 가능성을 드러냈다.

차민규의 은빛 레이스는 스타트부터 좋았다. 첫 100m 구간 스피드가 아쉽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차민규는 이날 9초63에 100m를 주파했다. 전체 36명 중 9위의 기록이긴 했지만 올 시즌 자신의 월드컵 100m 기록(9초68)을 뛰어넘는 좋은 기록이었다. “첫 100m를 9초72 안에 들어오면 큰일 낼 것”이라는 이인식 감독의 말대로 깜짝 메달을 선물했다.

○ 수영 배우고 싶어요

은메달을 확정한 뒤 차민규는 “순위권 안에 든 게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벅차다. 동메달보다는 은메달이 좋으니까 기분 좋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상대방 선수가 저를 제치고 이겨서 일단 놀랐다. 솔직히 상대방이 실수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간절히 기도했다. 좋은 기록이어서 금메달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아쉽게 졌다. 목표는 순위권이었기에 지금은 덤덤하다”고 덧붙였다. “잘 타는 후배가 많으니 다들 지켜봐줬으면 좋겠다”고 후배를 위하기도, “(모)태범이 형은 (밴쿠버) 금메달 있으니까 아직 태범이 형에겐 안 된다”며 선배를 존중하기도 했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차민규의 어머니 최 씨는 “오른쪽 인대가 끊어졌을 땐 선수생활이 사실상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4년 뒤 메달 단상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올림픽 후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물 공포증이 있어 수영을 배우겠다”는 독특한 답을 내놨다.

강릉=강홍구 windup@donga.com·김배중·박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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