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속 500m 차민규, 0.01초차 은메달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차민규의 어린 시절 모습. 어릴 때부터 유독 코피를 많이 흘렸던 차민규는 허약한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초등학교 3학년 때 쇼트트랙을 시작했다. 브라보앤뉴 제공
그는 긴장을 모르는 천성을 타고났다. 19일 생애 첫 올림픽 무대였던 평창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스타트 라인에 섰을 때도 그저 담담했다. 역대 올림픽 타이기록인 34초42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따낸 뒤에도 엷은 미소를 띠었을 뿐이다. ‘천재’이자 ‘괴짜’ 스케이터 차민규는 그렇게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인생 스토리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 코피 자주 쏟아 운동 시작
한국체대 입학 때도 쇼트트랙을 했다. 그런데 힘과 폭발력이 좋은 그의 발전 가능성을 본 전명규 교수(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는 스피드스케이팅으로의 전향을 권했다. 처음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선발전에 나선 그는 6명을 뽑는 대회에서 7등을 했다. 차민규는 “쇼트트랙에서는 잘해야 주니어 대표를 노릴 수준이었다. 하지만 스피드에서는 조금만 더 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4년 내내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을 병행했다. 한국 빙상판에서 몇 안 되는 사례다.
○ 가냘픈 스프린터
차민규는 보통의 500m 선수와는 체격이 다르다. 키 179cm에 75kg으로 마른 편이다. 순간적인 파워를 쓰기 때문에 우락부락한 근육을 만드는 보통 선수들과는 차이가 있다.
차민규의 은빛 레이스는 스타트부터 좋았다. 첫 100m 구간 스피드가 아쉽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차민규는 이날 9초63에 100m를 주파했다. 전체 36명 중 9위의 기록이긴 했지만 올 시즌 자신의 월드컵 100m 기록(9초68)을 뛰어넘는 좋은 기록이었다. “첫 100m를 9초72 안에 들어오면 큰일 낼 것”이라는 이인식 감독의 말대로 깜짝 메달을 선물했다.
○ 수영 배우고 싶어요
은메달을 확정한 뒤 차민규는 “순위권 안에 든 게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벅차다. 동메달보다는 은메달이 좋으니까 기분 좋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상대방 선수가 저를 제치고 이겨서 일단 놀랐다. 솔직히 상대방이 실수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간절히 기도했다. 좋은 기록이어서 금메달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아쉽게 졌다. 목표는 순위권이었기에 지금은 덤덤하다”고 덧붙였다. “잘 타는 후배가 많으니 다들 지켜봐줬으면 좋겠다”고 후배를 위하기도, “(모)태범이 형은 (밴쿠버) 금메달 있으니까 아직 태범이 형에겐 안 된다”며 선배를 존중하기도 했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차민규의 어머니 최 씨는 “오른쪽 인대가 끊어졌을 땐 선수생활이 사실상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4년 뒤 메달 단상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릉=강홍구 windup@donga.com·김배중·박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