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공세 몰아치는 미국]美-中 무역전쟁에 등터진 한국
이에 따라 미국이 철강 수입 규제 대상으로 꼽은 12개국 리스트에서 빠져나오려면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 철강에 중국산이 많이 포함돼 있지 않은 현실을 집중 부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中철강 수입 후 재가공해 美에 덤핑”
정부는 미국의 수입 규제 조치 가운데 12개 국가의 철강 제품에만 53%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한국에 가장 불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강성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는 19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12개 국가에 한국이 포함된 건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 상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6년 기준 중국산 철강 1422만 t을 수입해 전 세계에서 중국산 철강을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다. 미국은 한국을 중국산 철강 제품을 대신 수출하거나 중국산 제품의 빈자리를 차지하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대 철강 수입국인 미국은 2016년 기준 3090만 t을 수입했다. 같은 해 미국에서 소비된 철강 제품 약 9500만 t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규모다. 미국은 높은 수입 비중 탓에 자국 철강산업이 붕괴되고 최악의 경우 안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과잉 수입되는 철강물량이 경제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로 국가안보 위협론을 부각한 셈이다. 하지만 특정 품목의 수입물량을 자국 생산량과 비교해 안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다소 과장된 논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한국 수출 철강 중 중국산은 2.4%뿐
이와 함께 정부는 한국 철강업체들이 미국 시장에서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앞세워 미국 논리를 반박하고 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한국 업체들은 지금까지 미국 현지 법인 등을 통해 약 57억 달러를 투자했고 그 결과 7700여 명에 이르는 고용창출 효과를 내고 있다.
한국의 논리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미국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자국 철강산업 가동률을 80%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수입량을 1330t 감축하겠다는 목표가 뚜렷한 만큼 한국을 위해 양보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강 차관보는 “산업부는 물론 외교부, 국방부 등 모든 부처가 나서 미국 상무부나 백악관 등의 관계자들에게 한국 측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 “통상정책 재검토 계기 삼아야”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통상 압박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예견된 일이었는데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안이하게 대응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탄핵 정국으로 정부가 초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라며 “미국 측 이슈에 끌려가지 말고 연구기관이나 현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 정부 간 대화 등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이건혁 gun@donga.com / 위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