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시간 10대 폭행사건 전말 배꼽-특정부위 라이터 불로 고문…강제 삭발·집단구타 등 악몽의 37시간 약점 있는 동급생 상대로 범행 모의…피해 학생, 트라우마에 시달려 본보 보도(9일자) 이후 후원 문의 쇄도…경찰, 가해 학생 3명 구속영장 검토
친구의 다그침을 듣는 순간 A 군(16)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속으로는 ‘갚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지할 곳 없이 혼자 사는 A 군에게 ‘16만 원’은 꿈에서도 만지기 힘든 큰돈이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미안한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자신이 30시간 넘게 끔찍한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본보 9일자 A12면 참조 [단독]또래 37시간 감금폭행… ‘잔혹 10대’
강북경찰서는 5일 오후부터 7일 오전까지 약 37시간 동안 빈집에서 A 군을 마구 때리고 라이터 등으로 가혹행위를 한 혐의(특수폭행 등)로 B 군(16) 등 3명을 입건했다고 19일 밝혔다. 다른 한 명은 가혹행위에 적극 가담했지만 형사미성년자(만 14세 미만)라 처벌 대신 법원 소년부로 송치될 예정이다. 현장에 있던 다른 10대 5명도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당시 상황을 지켜봤을 뿐 폭행이나 가혹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결과 당시 B 군 등 3명은 A 군이 친구한테 빌린 돈 16만 원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했다.
A 군이 일부러 빚을 진 건 아니었다. 경찰과 청소년보호시설에 따르면 A 군은 가족관계가 거의 단절된 상태에서 홀로 생활했다. 일정한 거처도 없어 청소년보호시설을 전전하며 학교를 다녔다. 졸업을 앞둔 올 1월에는 친한 친구 집에 머물며 신세를 졌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미안한 마음에 A 군은 집을 나섰다. 그러면서 “돈 많이 썼지. 얼마나 썼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16만 원 정도 되는데 갚으려고?”라고 답했다. A 군은 “그래 갚을게”라고 말한 뒤 친구와 헤어졌다.
이후 일주일가량 시간이 흘렀다. 연락이 닿지 않는 A 군을 친구가 수소문하던 과정에서 B 군 등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A 군이 돈을 갚지 않는다고 여긴 B 군 일행은 강제로 돈을 받아내는 계획을 생각했다. A 군의 친구 역시 이들의 위세에 눌려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친구들의 꾐에 넘어간 A 군은 7일 문제의 빈집에 갔다가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했다.
경찰 조사에서 가해 학생들은 “A 군이 처음에 돈을 갚는다고 했다가 안 갚아서 거짓말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외에도 사소한 거짓말이 많았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A 군을 보호 중인 청소년보호시설 상담원은 “A 군이 돈 갚을 처지가 아니라는 건 가해 학생들도 알고 있었다. 다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A 군이 돈 있고 힘 있는 집의 아이였어도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하며 “가난이 죄가 된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경찰은 가해 학생들의 범행 수법이 심각해 B 군 등 3명의 구속영장 신청까지 검토 중이다.
A 군의 아버지는 수년째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떨어져 살던 어머니는 사건이 알려진 뒤 한 차례 시설을 찾았지만 A 군을 만나지 못했다. 대신 어머니는 시설 측에 아들의 보호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설 측은 “가해 학생들의 1심 선고 때까지 A 군이 시설에서 머물며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A 군이 영상편집 엔지니어라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계속 돕겠다”라고 밝혔다. 본보 보도 후 A 군을 돕고 싶다는 후원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A 군 변호인과 시설 측은 “조만간 A 군을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배준우 jjoonn@donga.com·사공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