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내셔널 갤러리서 열린 기획전, 한국 단색화 한 점도 전시 안해… 담당 큐레이터 “한국 작품 몰라” “韓 단색화 해외 인정 받으려면 학술·미학적 가치 고민해야”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모노크롬: 페인팅 인 블랙 앤드 화이트’전에서 마지막 전시관을 장식한 덴마크 작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1997년 설치 작품 ‘룸 포 원 컬러’. 모노크롬전은 얀 반에이크, 앵그르 등 거장부터 마를렌 뒤마, 척 클로스 등 현대 작가의 단색화를 총망라했다. Photograph: Anders Sune Berg/ⓒ Olafur Eliasson
최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모노크롬: 페인팅 인 블랙 앤드 화이트’는 이런 분위기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전시였다. 런던의 심장부 트래펄가 광장에 위치한 내셔널 갤러리 주최로 지난해 10월부터 열려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14세기 스테인드글라스부터 21세기 설치미술까지 세계의 모노크롬(단색화)을 통시적으로 다룬 기획전이었다. 마를렌 뒤마(남아프리카공화국)나 척 클로스(미국), 브리짓 라일리(영국) 등 동시대 작가도 다수 포진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한국 단색화는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전시를 4년 동안 준비했다는 큐레이터 렐리아 패커의 반응은 더 놀라웠다.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미안하지만 한국 단색화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여러 작가의 이름을 언급해도 같은 답이 돌아왔다. 패커는 미국 뉴욕대에서 모노크롬을 주제로 박사논문까지 쓴 전문가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상업 갤러리 일부는 한국 단색화를 알지만 학계 인지도는 낮은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단색화를 하나의 독립된 사조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리처드 바인 아트 인 아메리카 편집장은 단색화가 때늦은 모더니즘으로 보일 우려가 있으며 한국 미술계가 이를 적극적으로 불식해야 한다고 진단한 바 있다. 패커 큐레이터도 “재스퍼 존스 등 개별 작가의 모노크롬은 조명하지만 기법 자체를 다루는 전시는 없었다”며 “이번 전시도 최대 스케일로 모노크롬의 오래된 전통을 보여주는 게 기획 의도”라고 말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지금부터라도 한국 단색화에 대한 냉정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세계인이 인상파를 보러 파리를 찾듯 단색화가 국제적 인정을 받으려면 이미 수묵화로 이어 온 오랜 전통을 새 미학으로 내세울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해외 사정에 어두운 국내 컬렉터를 기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런던=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