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19일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양회성기자 yohan@donga.com
한국 연극계의 대표적 극작가 겸 연출가인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66)의 성추행 피해자인 이재령 음악극단 콩나물 대표 겸 연출가는 20일 “현명하고 확실한 대처를 위해 전문가분들의 조언을 얻고자 한다. 오늘부터 시작”이라며 이 전 감독에 대한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이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채널의 고소는 시간만 길어질 수 있다. 힘을 실어 하나로 뭉치고자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성추행·성폭행 피해자들과 소통하며 이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이 대표는 “어제 새벽까지 많은 이를 만났고, 들었고, 우리 모두 온몸을 떨고 통곡했다”며 “많은 제보가 필요하고 익명이라도 근거나 주장들이 필요하다. 힘을 합치실 분은 연락 달라”고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동참을 호소했다.
그는 1999년 22세일 당시 이 전 감독의 극단에서 합숙 생활을 했다며, “선배님 중에 안마를 시키는 담당이 있었고 막내기수 여자들은 조를 나누어 안마중독자인 연출님을 밤마다 두 명씩 주물렀다. 예외인 친구도 몇 있었는데 나중 생각해보니 순진한 친구들만을 시켰던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몇 주 정도는 팔다리 등만 주물렀지만, 한달 정도 지나자 바지를 벗고 속옷차림으로 안마를 받기 시작했다. 사타구니 주변이 혈이 모이는 자리라고 집중적으로 안마를 요구하기 시작했다”며 “곤란한 부위를 안마하느라 애써 요리조리 피해보려 노력했고, 더욱 요구 수위는 높아졌다”고 회상했다.
이 대표는 “안마 조에서 빠질 유일한 방법은 무대조명팀에 들어가서 밤늦게까지 힘든 일을 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저는 무대조명팀에 자진해서 들어갔고 이후 안마를 하지 않게 됐다”며 “다음해에 극단을 나왔고 이후로는 없는 일 일거라 생각했는데, 10년 전에도, 국립(극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니 정말 실망스럽고 후회스럽다”고 분개했다.
이 대표는 이 같은 고백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또 다른 피해자들의 폭로 글을 공유하며 ‘미투’ 운동을 확산시켰다.
B 씨는 “동생 배우와 게릴라소극장 분장실로 불려가 발성에 대한 레슨을 받았다. 절차와 순서에 대해선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며 “‘섹스 해봤어요? 해봤지요? 그거랑 똑같아요’ 하며 몸을 밀착해 내 가슴 주위를 눌렀고 나에게 소리를 내보라고 했던 기억은 너무 선명하다”고 적었다.
C 씨는 ‘이런 애들은 내 방에 데려가서 한 번 하면 발성이 툭 트여요’, ‘C는 활동도 많이 했는데 왜 안 떴을까? (크고 싶으면) 옷 한 번 벗자’ 등 이 전 감독의 성희롱 발언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 전 감독이)발성연습의 일환으로 배우들에게 대사를 시킨 후 배우들 뒤에 서서 양손으로 명치부터 가슴을 둥그렇게 그리면서 접촉. 뒤로는 성기 접촉도 있었음”이라고 적기도 했다.
D 씨는 “황토방에서 이쌤(이윤택)한테 가슴을 다 까여지고 훈련이라는 명목 하에. 나중엔 그 일로 사람들 앞에서 놀림 당했다. 연기훈련으로 둔갑됐고 저는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며 “몇 개월 지나고 안마해드릴 때 처음으로 바지 내리고 후배 손을, 제 손을 성기에 갖다대게 됐을 때 얼음이 됐다. 저희 손을 잡고 성기 주변을 주무르며 호흡 발성에도 도움이 된다며. 10여분 지나고 사정도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이 대표는 연극배우 김지현의 글도 공유했다. 김지현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을 했다. 여자 단원들은 밤마다 돌아가며 안마를 했고 나도 함께였다. 수위는 점점 심해져 혼자 안마를 할 때 성폭행을 당했다”며 “2005년 임신을 했고 제일 친한 선배에게 말씀을 드리고 조용히 낙태를 했다. 이를 안 선생님(이윤택)은 내게 200만 원인가를 건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이 대표가 공유한 글에서 E 씨는 “나는 지금 몹시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다. 나도 가해자임을 인정한다. ‘누구야 너 오란다’라고 했던 비겁한 나를 인정한다. 부끄럽고 부끄럽다. 힘들다”라며 “나 같은 방관자도 미투라고 해도 괜찮은 건가? 미안해요.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했다.
F 씨는 “연기를 곧잘하는 학생들에게 졸업 후 연희단에 들어가서 합숙하며 연극을 경험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며 권유를 한 적이 있다. 합숙생활이 쉽지 않아서 그만두고 싶다는 친구에게 그래도 일 년은 버텨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어디서 그런 경험을 또 해보겠느냐며 다독이며 말했다”며 “그 말들이 그 조언들이 그것들이 그 왕국을 견고히 하는데 일조한 것 같아 참담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이 대표는 이 같은 글을 공유하면서 ‘침묵자’들에게 “제 위의 선배님들 아무도 액션이 없다. 솔직히 너무 실망스럽고 아프다”라며 “예전에 그 수치를 겪은 당시보다 지금 당신들이 더 비겁하다고 느낀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제발 세상을 제대로 살 수 있게 도와 달라. 제발 용기를 내달라”며 “저랑 (페이스북)친구인 연희단의 모든 선배님. 우리는 모두 피해자다. 여러분도 피해자”라고 ‘미투’ 동참을 호소했다.
최정아 동아닷컴 기자 cja09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