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 후 화장 문화가 보편화된 일본의 봉안묘지.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우리 사회에서 시신을 불에 태우는 화장 문화는 보편적인 장묘 제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추세다. 요즘에는 가족 납골묘(봉안묘)를 마련해 선대의 유골들을 한데 모으는 풍속도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사실 화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리 낯선 문화도 아니다. 불교가 성행했던 신라와 고려 중기까지만 하더라도 화장은 ‘고급스러운’ 장례법이었다. 1300여 년 전 신라에서는 수중릉으로 유명한 문무왕을 비롯해 모두 8명의 왕이 화장을 했다. 고려의 귀족층은 대체로 화장한 유골을 사찰에 안치해 제를 올리는 권안(權安) 의식을 가진 뒤, 일정한 날을 잡아 조그마한 돌널 등에 담아 땅에 묻는 장례를 치렀다.
화장 문화가 시신을 온전히 안치하는 매장 문화로 대세가 바뀌게 된 것은 고려 후기인 13세기 말 중국에서 주자학이 수입되면서부터다. 주자학을 정치 이념으로 받아들인 고려의 신진세력은 조상의 시신을 훼손하는 화장을 ‘불인(不仁)’한 것으로 몰아붙였다. 이후 이들의 주도로 건국한 조선은 화장을 아예 금지하는 법령까지 만들었다. 오늘날의 매장 문화는 바로 조선의 유교식 장례 문화를 이어받은 결과다.
그런데 이 속설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중국의 풍수서 어디서도 화장에 대한 언급은 없다. 대개 매장을 전제로 한 풍수 논리를 펼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유교가 본격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로 채택되기 시작한 한(漢)나라 이후에 ‘청오경’ ‘금낭경’ 등 풍수서가 등장한 점과 무관치 않다. 매장 문화가 보편적인 장묘제로 채택되는 상황에서 굳이 화장을 언급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럴싸한 과학적 이론을 끌어대 화장은 무해무득하다는 주장도 있다. 시신을 화장하면 조상과 자손 간 동기감응의 ‘원천’이 되는 유골의 DNA까지 파괴되므로 무해무득하다는 논리다. 유골의 DNA가 동기감응의 원인 물질이 된다는 주장은 아직 증명되지도 않았거니와, 온도 1000도 내외로 화장을 한다고 해서 뼈의 DNA가 실제 파괴되는 것도 아니다. 현대의 법의학계는 불에 탄 유골에서도 얼마든지 DNA를 채취해 유전자 감식을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풍수학의 동기감응은 동양의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땅에 묻힌 뼈를 매개체로 삼아 조상과 자손 간 ‘기운의 교류’라는 4차원적 교감을 전제로 삼는다. 화장을 했건 매장을 했건, 같은 기운은 시공을 초월해 파동(波動)의 형태로 감응을 한다는 원리다.
화장한 조상 묘와 자손 간의 동기감응 사례는 화장 문화가 발달한 중국과 일본에서 흔하게 목격된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베이징의 국립묘지(바바오산 혁명공묘·八寶山 革命公墓)에 안치된 부친의 봉안묘를 고향인 푸핑(富平)현으로 이장한 뒤 대권을 거머쥔 것으로 유명하다.
흥미로운 건 아베의 ‘외손(外孫) 발복’ 명당을 보면 친가(親家) 위주의 풍수관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기운이 같은, 즉 유전자적 친연성이 강한 조손(祖孫) 관계는 친가와 외가를 가리지 않고 동기감응한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얼마 후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인의 남편이 자녀의 장래를 위해 장모의 묘까지 꼭 챙기겠노라고 다짐했다는 거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