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프’ 사이로 알려진 존 매케인(왼쪽) 의원과 린지 그레이엄. 워싱턴 이그재미너 사이트 캡처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워싱턴 특파원
미국 정계에는 소문난 ‘베프’(best friend·절친한 친구) 사이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상원의원 존 매케인(82)과 린지 그레이엄(63)입니다. 지난해 매케인이 뇌종양 수술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이가 그레이엄입니다. 둘이 침대맡에서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둘 중에 나이가 더 많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매케인이 얼마 전 망신을 당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게이트’ 수사 중단 압력을 증언한 제임스 코미 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에 대한 상원 청문회에서 질문자로 나서 주제와는 동떨어진 질문을 던지면서 횡설수설했습니다.
시사잡지 뉴스위크는 ‘McCain Throws Graham under the bus’라는 제목을 뽑았습니다. 직역을 하자면 ‘매케인이 그레이엄을 버스 밑으로 던져버렸다’가 되겠죠. ‘버스 밑으로 던져버리다’는 ‘배신하다’ ‘희생양으로 만들다’라는 뜻입니다.
친구를 배신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수석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을 버스 밑으로 던져버렸습니다. 배넌이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 아들 등이 러시아 정보원과 만났다는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대선 일등공신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배넌을 “제 정신이 아니다”며 맹비난했습니다. 러시아 내통 혐의를 벗기 위해 친구를 배신한 거죠. 이때도 미국 언론은 ‘Trump throws Bannon under the bus’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표현은 원래 스포츠 용어였습니다. 같은 팀 동료를 버스 밑으로 밀어버려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스포츠에서 유래했을지 몰라도 오늘날 많이 쓰이는 건 정치에서 배신을 말할 때입니다. 미국 정치 기사를 읽다 보면 ‘누가 누구를 배신했다’고 할 때 꼭 등장하는 표현이지요.
누군가를 버스 밑으로 던져버리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끔찍합니다. 이런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정치는 잔인한 건가요, 무딘 건가요.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