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는 사람도 잘사는 세상을” 옳은 규범을 외치는 진보진영… 안 될 것을 될 것처럼 국민을 ‘희망고문’ 하는 정치 옳은 것도 옳다고 하지 않아 ‘꼰대’가 된 위기의 보수, 진보 실패 기다릴 게 아니라 좋은 가치 실현할 정책 내놔야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좋아 보인다. 때로 감동적이다. 하지만 그건 여기까지이다. 그런 가치들을 실현시키고 지속되게 할 단단한 대안을 가지고 있느냐 물으면, 그때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에 대한 고민이 그리 깊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어떻게 하면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을 잘살 수 있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일단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할 것이다. 성장하지 않으면 나눌 것이 적어지고, 그렇게 되면 힘없는 사람들의 몫은 더 크게 줄어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어려울 때 힘없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잘살게 된 적이 있었는지를.
어떤가, 이 문제에 있어 우리의 진보는? 아닌 것 같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즉 분배구조 개선을 통해 내수도 살리고 경제도 성장시킨다는 정책만 해도 그렇다. 우리 스스로의 고민이 농축된 것이라기보다는 국제노동기구의 임금주도성장을 본뜬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수출 중심에다 영세 자영업자가 많은 우리 경제에 잘 맞지 않는다. 당장에 그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 문제부터 삐걱거리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여기에 ‘혁신성장’ 등이 더해지고 있다. 나름대로 연결되기도 하겠지만 왠지 그럴듯한 것은 다 가져다 놓은 느낌, 그래서 오히려 제대로 된 대안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저것 다(everything)라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닐(nothing) 수 있기 때문이다.
대안 없이 옳은 것을 옳다고만 하는 정치는 우리를 ‘희망고문’한다. 안 될 것을 될 것처럼 여기게 한다는 말이다. 대안이 없으니 권력이나 정치적 에너지 또한 옳은 가치를 실현·지속시키는 쪽이 아니라 상대의 흠을 잡아 비난하고 공격하는 쪽으로 쓰이게 된다. 정치는 또 한 번 미래가 아닌 과거를, 화합이 아닌 분열을 향하게 된다.
잘못된 진보,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책임은 보수진영에 있다. 인권 상생 환경 등, 옳은 것을 옳다고 하지 않으니. 진보는 옳은 것을 옳다고만 해도 표를 얻는다. 이렇게 쉬운 정치를 두고 왜 굳이 대안을 고민하는 어려운 정치를 하겠는가.
세상이 변했으면 보수의 인식도 바뀌어야 했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 옳은 것들이 보수가 강조해 온 성장과 경쟁, 그리고 안보의 논리와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했다. 또 더 나아가 자유와 자율 등, 새로운 시대에 맞는 보수적 가치들을 잘 다듬어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인권이 중요하다 하면 같이 그 대안을 찾아야 할 일을, ‘북한 인권은 어떡하고’ 되묻기부터 했다. 그 순간 보수는 ‘꼴통’이 되었다.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에게는 ‘왜 험한 일은 하지 않느냐’ 야단만 쳤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 대안은 마련하지 않고 말이다. 그 순간 보수는 ‘꼰대’가 되었다.
변해야 한다. 대안 없이 옳은 것을 옳다고만 하는 진보정치도, 옳은 것을 옳다고 하지 않고 그를 위한 대안도 없는 보수정치도 변해야 한다. 한쪽이 변하면 다른 한쪽도 변하는 법, 어느 쪽이든 먼저 변해야 한다.
어느 쪽이 먼저 변해야 할까? 보수 쪽이다. 보다 잘사는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면, 분배보다는 성장의 논리에, 평등보다는 자유의 논리에 익숙한 쪽이 앞서가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보수의 변화는 보수만의 과제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역사적 과제가 된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