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청년수당 실험, 빅데이터로 분석해보니 만 19∼29세 청년구직자 선발… 매달 50만 원씩 6개월간 지급 도서 구입비-강의 수강료로 쓰고 친구들과 만나며 소통 기회 늘려 “사회가 돌봐준다는 것에 안정감”
지난해 8월부터 청년수당을 받은 B 씨(30·여)는 주로 인문학 강연을 듣거나 책을 사는 데 수당을 썼다. 나머지는 식비 등 생활비에 보탰다. B 씨는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심리적으로 든든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 청년이 진짜 원하는 건 ‘돌봄’
서울시 수당은 정부에서 주는 수당과 달리 반드시 구직활동에 쓸 필요가 없다. 그 대신 하나의 의무가 따른다. 청년수당을 받는 둘째 달과 다섯째 달에 활동결과보고서를 내야 한다. 지난해에 서울시에 제출된 보고서는 모두 8829건이다. 빅데이터 컨설팅 전문업체인 아르스프락시아는 서울시의 의뢰를 받아 이 보고서에 담긴 단어들의 의미망을 분석했다. 청년수당을 받은 청년들의 삶과 심리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서다.
분석 결과 청년들은 수험서나 문제집, 도서 등 책값으로 수당을 많이 지출했다.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를 수강한 사례도 많았다. 수당 지급 후반에는 구두나 정장 등 면접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빈도가 늘었다. 창업이나 창작을 위한 장비나 제품을 구매한 청년들도 있었다. 청년수당이 청년의 구직과 자립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의미망 분석에서 주목할 대목은 청년들이 돈 자체보다 ‘돌봄’을 원한다는 점이다. 청년수당을 받은 이후 고립된 생활에서 벗어나 인간관계가 돈독해졌다는 내용이 많았다.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와 만나는 횟수가 늘어난 것이다. 청년수당이 청년들에게 돈과 함께 ‘여유’와 ‘시간’을 선사한 셈이다.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는 “청년수당이 구직활동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가 제공한 서비스 중 청년들이 유익하다고 평가한 것은 △정보 콸콸(수급자에게 각종 구직정보를 문자메시지로 보내주는 것) △마음탐구 △심리상담 등이었다. 하준태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기획실장은 “청년들은 돈과 일자리 그 자체보다 누군가가 챙겨주고 돌봐준다는 사실에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활동보고서에선 “어떤 용도로 지원금이나 수당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적지 않았다. 이는 청년수당 도입 때부터 논란이 된 부분이다. 내년 1월부터는 정부의 청년수당을 서울시처럼 구직활동 외에도 사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어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방지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취업성공 패키지’ 3단계(구직 단계)에 진입한 청년에게만 ‘청년구직촉진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수당을 받으려면 고용센터 담당자와 대면 상담을 한 뒤 정부가 위탁한 민간기관의 취업알선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내년부터 취업성공 패키지에 참여하지 않고 취업계획서만 내도 심사를 거쳐 수당을 지급할 계획이다. 금액도 30만 원에서 60만 원으로 올리고, 기간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난다. 지원 대상도 올해 9만5000명에서 내년 21만3000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성열 ryu@donga.com·조건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