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일
12월 초 시작된 한파와 함께 함박눈도 여러 차례 내렸다.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계속 내린 눈으로 겨우내, 입춘이 지난 지금까지 온통 설국이다.
나는 일주일에 3번 정도는 읍내에 나간다. 홍천 읍내로 가려면 지르메재를 넘어야 한다.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넘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난다. 정말, 그림책이나 크리스마스카드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래도, 내촌천이 흐르고 산으로 빙 둘러싸인 우리 동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때마다 문득문득 스케치북을 꺼내들고 싶다. 특히, 해가 저 너머 산자락으로 넘어가고 두어 시간 지나 어둠이 점점 진하게 깔릴 때면 더욱 그렇다.
나무 덱에 앉아 차 한잔 하다 보면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산인지,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시리우스가 반짝이는 저 높은 곳이 하늘이겠지 할 뿐. 길은 아예 모습을 감추고, 다만 저 앞에 둥실 떠있는 흐릿한 가로등 불빛이, 고개 넘어 연못골 가는 언덕길이겠구나 짐작하게 한다.
앞산이 가장 어둡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산의 윤곽이 잡힐 듯한데 접시를 엎어 놓은 듯도 하고 커다란 초가집 지붕 같기도 하다. 참 좋다. 이 색채, 이 느낌을 그림에 담아 많은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다.
아직도 친구들이 종종 묻는다. 어떻게 지내나? 백화점도, 볼링장도, 당구장도 없는 농촌에서 우울증이라도 걸릴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다. 눈도 많고, 더욱 추워진 올겨울엔 그런 전화가 더 늘었다.
올해도 홍천과 춘천에서 듣는 강좌가 주 3회, 도자기 공방 강좌, 아코디언 강좌가 있다. 그나마 일주일 중 수요일은 비워 놓았다. 밭에 덮어 뒀던 비닐도 걷어야 하고, 오미자 매실나무 가지치기도 해야 하는데 추운 날씨와 눈을 핑계로 미루고 있다. 날이 풀리면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한일
※필자는 서울시청 강동구청 송파구청에서 35년간 일하다 강원 홍천으로 이주해 농산물을 서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