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관련 오동식 양심선언 이어… “고통받는 후배들에게 사과한다”
조민기 제자 등도 동참 대열
문 닫힌 연희단거리패 작업실 23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연희단거리패의 작업실 ‘30 스튜디오’ 내부. 이윤택 전 예술감독의 성폭력 파문으로 극단이 해체를 선언한 뒤, 인적이 끊긴 채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의 내용이다. 작성자 A 씨는 자신을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이라고 밝혔다. 그는 “비난을 받으며 침묵하기보다 함께했던 동료들을 위해 이제 사실을 모두 적겠다”며 배우 조민기 씨(53)의 제자였던 시절의 일을 털어놨다.
A 씨는 “식사나 술자리가 있으면 항상 조 교수 옆자리에 여학생들이 앉아야 했다. 힘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만취한 조 교수를 저녁 늦게 오피스텔에 재우고 나오면서 ‘탈출했다. 다들 고생했다’며 학교로 가던 발걸음이 생생하다”며 당시 느꼈던 자괴감을 토로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성폭력을 목격하고도 침묵했던 수많은 방관자가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들의 고백은 성폭력 피해자의 실명 폭로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방관자의 고백은 극단 연희단거리패 출신 배우 오동식 씨(46)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그는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66)의 해명 기자회견 다음 날인 2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연희단거리패에서 있던 일들을 은폐하고 방관했다”고 털어놓으며 기자회견 사전 연출까지 폭로했다. 오 씨의 고백은 이 전 감독과 다른 문화예술계 인사를 둘러싼 추가 폭로에 영향을 미쳤다.
서울예술대 99학번 김모 씨도 23일 학교 SNS에 “선배들의 행동과 폭력을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후배들에게 강요했던 제 자신을 반성한다”고 밝혔다. 김 씨는 “괴물은 절대로 혼자서 자랄 수 없다. 무관심이란 토양에서 암묵적 동의와 침묵의 카르텔이란 먹이를 먹고 자란다”며 “침묵하는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 후배들을 위해 반성하고 또 반성하겠다”고 자성했다.
한 예술대 출신 연극배우 B 씨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수많은 ‘방관자’의 심경을 전했다. 그는 “그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당시 ‘나는 몰랐다’고 거짓말한 것이 지금 너무 괴롭고 미안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