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민주공화정 변혁 몰고 온 촛불혁명사의 뿌리, 3·1혁명… 이승만이 ‘운동’으로 격하시켜” 제헌헌법 3·1혁명 초안에서 민주주의 전통 끌어냈음에도 지나친 이승만 격하 아닌지 촛불혁명 정부 자임하며 어떤 체제 변경 꾀하는가
김순덕 논설주간
다음번 개각 때는 3·1운동이냐, 3·1혁명이냐를 묻는 청문회가 등장할지 모른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김민석 원장이 지난주 “역사의식과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담론으로서 역사 문제를 제기한다”며 3·1운동의 재정립을 주장해서다. ‘친일인명사전’ 등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가 2014년 ‘3·1혁명 100주년 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키면서 “3·1운동은 단순한 항일운동이 아니라 민주공화제 이념이 뿌리를 내리게 한 혁명”이라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파 후보자라면,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공화국을 수립한 1948년의 대한민국 건국이 오히려 혁명이었다고 답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민석에 따르면 3·1운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건립과 민주헌정의 역사적 뿌리이자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진 평화적 대중운동의 시조이며, 촛불혁명사(史)의 뿌리다. 제헌헌법 초안에도 3·1혁명으로 기술됐으나 정작 제헌헌법에는 3·1운동으로 격하됐다며 그는 “도산 안창호는 이승만 그룹에 의해서 (그 의미가) 격하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민족문제연의 이준식 연구위원이 “결과적으로 제헌국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이승만 세력과 한국민주당에 의해 3·1혁명은 3·1운동으로 바뀌었다”고 2014년 세미나에서 지적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김민석이 한 말도 결국 같은 얘기다. 민주당 다수 의원들이 국립묘지 참배도 거부하는 이승만과 친일파가 3·1혁명을 운동으로 격하시켜 민주혁명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제거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영록 조선대 교수는 지난해 ‘헌법에서 본 3·1운동과 임시정부 법통’ 논문에서 “그런 이해는 지나치게 오늘날의 관점을 투여해 당시의 의미를 오해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속기록에 나오듯 3·1혁명에서 민주주의 전통을 끌어낸 사람이 이승만이다. 해방 후 3·1혁명의 명칭을 꺼리고 의미를 격하한 쪽은 오히려 박헌영 같은 좌파였다는 거다.
정명(正名)은 중요하다.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쿠데타가 지배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 이동으로 이루어진다면 혁명은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정치적 현상으로서의 혁명은 권력주체와 권력구조의 급격한 교체가 핵심이다.
“역사는 바른 정치를 시작하는 인식의 출발”이라고 김민석은 강조했다. 임시정부헌법과 제헌헌법을 통해 신민(臣民)을 국민으로, 군주제를 민주공화제로 변혁시킨 3·1운동은 혁명으로 명명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승만은 ‘혁명의 대상’으로 끌어내리면서 “한민당-공화당-민정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진 반민주·매국·친일·분단·냉전세력에는 진정한 애국, 자유, 민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역사인식을 당원교육으로 전파해서는 바른 정치가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