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책력은 음양오행과 풍수 방위에 따른 간단한 길흉 지침도 담고 있어 점치는 책 역할도 했다. ‘토정비결’과 함께 갖추는 이가 많았다. 국권을 빼앗긴 뒤 1911년부터는 일제 당국이 일본의 축일(祝日)과 농사 절기 등을 추가한 ‘조선민력’을 펴냈다. 조선의 마지막 달력은 1910년 ‘융희 4년 명시력(明時曆)’이다. 달력을 통제하는 이가 시간과 삶을 지배한다는 것을 ‘달력과 권력’(이정모, 부키)이라는 책제목이 말해준다.
거슬러 올라가면 사마천의 ‘사기’에 ‘역서(曆書)’가 있고 반고의 ‘한서’에는 ‘율력지(律曆志)’가 있다. 역사서에 달력이 포함된 이유는 하늘의 일과 인간의 일이 서로 응하여 통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책력으로 보물 제160-10호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이 있다. 서애 류성룡이 당시 중요한 사실들을 ‘대통력’이라는 책력에 적어 둔 것이다.
시인 조지훈의 수필 ‘원단(元旦) 유감, 캘린더의 첫 장을 바라보며’가 세월과 세상사에 관한 큰 울림을 준다. ‘동지는 가고 새해는 왔으나 겨울은 아직 다 가지 않았고 봄은 먼 곳에서 보일 듯 말 듯 모르겠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 흙덩이 밑의 새싹을 그저 느껴서 알 뿐이다. (중략) 낡은 것과 싸우는 동안에 새것도 그대로 낡아 간다. 의(義)도 권력과 결부되면 불의를 닮아 간다.’
표정훈 출판평론가